들풀 우거진 언덕에서 친구를 배웅하는 시인. 석별의 아쉬움이 풀처럼 다복다복 가슴에 그득하다. 저 멀리 옛길과 황폐한 도시에까지 닿은 그 향긋하고 싱그러운 푸르름으로 하여 더한층 마음이 아린 이별의 시각이다. 하나 해마다 시들었다 무성해지기를 반복하는 저 들풀처럼 우리의 인연도 무한히 이어지리라. 들불에 깡그리 타버려 겨우내 삭막했던 언덕에도 봄바람에 새록새록 풀이 돋고 마침내 저리도 울울창창한 풍요를 일구어내지 않는가. 시인이 마주한 이별은 그러므로 절망적인 슬픔이 아니라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듯 벅찬 희망으로 승화된다. 자연의 섭리를 통해 보여주는 긍정의 메시지가 이별의 아픔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젊은 백거이는 이 시로 명성을 떨칠 계기를 마련했다. 과거 응시를 위해 열여섯 나이에 장안에 온 그는 습작한 시문을 들고 대시인 고황(顧況)을 찾았다. 과거를 앞두고 자기 재능을 알리기 위해 고관대작이나 명사를 찾는 건 당시의 관행이기도 했다. 고황이 그의 이름을 듣고는 장안의 쌀값이 비싸 살기(居)가 쉽지(易) 않을 거라 농담했다. 하지만 ‘들불인들 다 태울소냐, 봄바람 불면 다시 돋아나는 걸’이라는 시구를 보더니 이 정도의 시재라면 어디서든 편히 살 거라고 극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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