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선 명령과 전화위복[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45〉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19일 03시 00분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몸이 앞뒤로 흔들리는 통에 잠을 깬 선장은 선교로 올라갔다. “뭐야, 뭐야” 하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좌초 사고였다. 다행히 아직 선창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희망은 있었다. 선주와 선장은 조선소와 연락해 배를 부양할 계획을 세웠다. 시간은 흐르고 구조선의 도착은 늦기만 했다. 선창에는 물이 들어오고 배는 더 가라앉기 시작했다. 선박이 좌초된 지 이틀 만에 선장은 결국 퇴선 명령을 내렸다. 선장으로서는 결코 결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한 선배 선장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자신이 책임졌던 선박과 화물을 모두 바다에 버리고 몸만 빠져나오게 되다니. 이런 불명예가 없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장으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다. 선원들은 모두 안전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호주 남부에서 귀국할 때까지 1주일이 소요됐다.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선택한 국비 해양대의 길이었다.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았다. 가세는 점차 회복되고 있었다. 손해배상 문제, 주위 사람들을 어찌 볼 것인지, 32세 선장에게는 모든 것이 막막했다. 300척 선단에서 최고의 1등 항해사로 평가받았던 선장이기에 주위의 안타까움도 컸다. 해도에 나타나지 않은 산호초 위로 배가 항해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 2등 항해사가 해도 개정을 누락해 생긴 일이지만 지휘 책임은 선장에게 있다.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는 선장에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민사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선원들의 잘못이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음을 입증하는 것이 선장이 해야 할 일이었다. 선장으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호주의 법정에서 수행했다.

선장은 귀국길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김포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짧은 활주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기장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속력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의 날개를 위로 올려서 바람을 덜 받게 했고 브레이크도 최대한 밟았다. 그렇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이런 기장과 같은 자세로 살아가자고 결심했다. 법학을 공부해 불행한 사고를 당한 선원을 도와주고 싶었다. 1년 동안 준비를 거친 다음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 그 이후 해상법에 천착했다.

그 사고로부터 꼭 30년이 되었다. ‘이보다 더 낮은 곳은 없다. 이제는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고 수없이 자신을 격려하고 채찍질하면서 살아왔다. 부끄러운 마음에 주눅이 들었었다. 선주와 화주에게 피해를 주었고, 선장의 명예를 훼손했다. 사고 후 움츠러들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해운업계에 더 많이 기여하기 위하여 남들보다 2배, 3배 열심히 30년을 하루같이 성실한 자세로 새로운 삶을 살아왔다. 어느 정도 좋은 평판도 확보되었다. 이제야 그 선장은 말할 수 있다. 그 사고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이 말을 할 수 있기까지 3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퇴선#명령#전화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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