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렇게 우리가 집회를 열어야만 합니까. 여행업계 종사자 10만 명의 울음이 들리지 않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22일 오전 10시경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중소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명섭 씨(61)의 목소리에는 짙은 울음이 묻어났다. 손에는 ‘매일 국내 여행 자제, 여행업 생태계 무너진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김 씨는 지난해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최근 집을 담보로 8000만 원 대출까지 받았다고 한다. 적자를 메우려 농장에서 사과를 땄고, 일용직 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수십 년 동고동락한 직원 7명 가운데 6명이나 내보내야 했다. 김 씨는 “방역당국의 여행 자제 권고가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여행사 운영 35년 만에 맞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최근 코로나19로 힘겨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은 여행업계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해당 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 가운데 한 곳인 건 분명하다. 한국여행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여행업계 매출은 2조580억 원으로 전년(12조6439억 원) 대비 83.7%가 감소했다. 이날 한국여행업협회와 전국 여행사 단체들로 구성된 ‘여행업 생존 비상대책위원회’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벼랑 끝에 선 심정에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당장 한두 푼의 지원을 바라고 여기에 나온 것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정부와 소통할 제대로 된 창구가 없다는 게 제일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오창희 한국여행업협회 회장은 “예를 들어, 무작정 14일 격리조치 기간을 줄여달라는 게 아니다. 어떤 근거로 격리 기간을 정한 건지 아무리 문의해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속상해했다.
사실 ‘소통 부재’는 여행업계에서만 나온 지적이 아니다. 올해 들어 카페와 피트니스센터, PC방 등 수많은 업종의 자영업자들이 항의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막상 만나 보면 대다수가 하나같이 “우리 얘기 좀 들어 달라”고 했다. 여행업계가 청와대 앞에 모였던 2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도 자영업자들의 집회가 열렸다. 이들 역시 “정부는 자영업자들의 거듭된 면담과 협의 요청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물론 정부가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대책에 손을 놓고 있다는 건 아니다. 모든 요구사항을 들어주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한목소리로 소통 부재를 지적하는 대목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만난 한 영세상인은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보다 제대로 답을 주지 않는 정부가 더 원망스럽다”고 했다. 국민을 위로하고 보듬는 일은 정부의 기본 의무다. 힘들고 고달파도 원칙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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