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때쯤이 나에겐 매우 뿌듯한 시기였다. 2018년 귀화한 뒤 2019년 처음으로 3·1절을 국경일로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학교 때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석사 때는 민족주의와 혁명을 공부해서 3·1절의 깊은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2019년 3·1절은 한국인들에게 100주년, 나에게는 1주년이었다.
당시 다문화 초보자로 큰 도전을 했다. 대학원 때 필기했던 노트를 모으고 정리해 책을 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세계 독립의 역사’라는 책이었는데, 세계 여러 나라의 독립 역사와 한국의 독립 역사를 비교해 3·1절의 의미를 깊이 연구해 보려는 취지였다. 동시에 독립하고 싶은 민족들에게 하나의 가이드북 같은 도서를 준비하고 싶었다. 첫 3·1절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한국의 독립운동과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들을 소개하면서 한국 사례의 의미를 다시 분석해 보고 싶었던 면도 있다.
3·1절을 맞아 책을 출간했고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신기했던 점은 같은 시기 상하이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일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현재 대한민국의 기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임시정부가 어째서 대한민국의 시작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반론이 서로 충돌했다. 신기한 현상이었다.
대한민국의 공식적이고 법적인 출발을 언제로 정할지를 떠나 당시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기 위해 고생했던 인물들의 공을 절대로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 해도 대한민국의 정신적인 배경은 3·1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한 가문의 제사 지내는 날에는 가족 구성원들이 다 모이고 그동안 서로 틀어졌던 가족들도 화를 누그러뜨린다. 우리도 국경일 때마다 이념 갈등으로 싸우지 말고, 국경일만큼은 가족 구성원의 의미 있는 날처럼 여겨 서로 안아 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미 있는 국경일을 지닌 나라가 드물기 때문이다. 3·1절처럼 자연스럽게 탄생한 국경일을 갖지 못한 나라들도 있다. 아직 독립을 못한 민족들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3·1절을 정치적 이념의 싸움터로 삼기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한다.
3·1절이 어떤 날인가. 단지 한국 민족 대표 33명이 독립 선언을 해서 우리가 3·1절을 국경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도 지식인들이 독립 선언을 한 적이 있었다. 항일 운동은 계속되었고 일본을 상대로 한 무력 충돌도 여기저기서 잇달았다. 이러한 시도들은 일부 단체나 특정 집단의 노력에 그쳤다. 그러나 3·1운동을 계기로 한국의 독립운동은 대중화되었다고 생각한다. 3·1운동 이후로 출신 지역과 종교를 떠나 대다수 한국인들이 크거나 작게, 조용하거나 요란하게 독립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때를 시점으로 독립에 대한 열망이 물꼬를 텄다고 본다.
민족주의적 자극이 없으면 독립을 할 수 없다. 비슷한 시기에 일제 지배를 받게 된 오키나와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3·1운동 같은 시도가 있었더라면 민족적인 의식이 더욱 크게 싹텄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자유의 품 안에서 주권을 지니고, 탄압받지 않고 살고 있다. 오늘이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우리에게 몇 가지 상징으로 남아있다. 태극기와 애국가, 국경일 등이다. 조상들의 유산인 이 상징들을 잘 지켜내 한 가족으로서 분란 없이 오래오래 평화로운 가정의 형태가 유지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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