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23일 동해에서 북한에 나포된 미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는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돼 있다.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1866년 조선군과의 충돌 끝에 불타 침몰한 그 장소다. 북한은 그 격침을 주도한 영웅이 바로 김일성의 증조부였다고 선전한다. 원산에 있던 큰 함정이 어떻게 옮겨졌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은밀하게 남·서해를 거쳐 해상으로 운송했거나 분해해서 육로로 수송했을 테지만 둘 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이틀 뒤 발생한 푸에블로호 사건은 냉전시대 미국에 최악의 굴욕 사건이었다. 억류 승조원 83명(사망 유해 1구 포함) 석방을 위한 11개월의 밀고 당기는 비밀협상 끝에 미 육군 소장이 서명한 사과문은 이랬다. “영해에 침입해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 데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고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다시는….” 미국은 서명 전부터 ‘오로지 승조원 구출을 위해서였다’며 그 내용을 전면 부인하는 성명을 냈지만, 사과문은 북한의 선전 자료로 충분했다.
▷승조원들은 온갖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곳곳에 저항의 흔적을 남겼다. 단체사진에는 가운뎃손가락만 편 채 등장해 은근히 반항과 모욕의 뜻을 표시했고, 자백서에는 나이·군번을 허위로 적고 ‘김일성을 찬양한다’며 ‘pee on(오줌 누기)’처럼 들리는 ‘paean(찬가)’이란 단어를 썼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잠깐의 환영 이후 당국 조사와 의회 청문회, 그리고 고문 후유증이었다. 이들에게 전쟁포로 훈장이 수여된 것도 20여 년이 지난 1990년이었다.
▷푸에블로호는 미 해군 함정 리스트에 남아 있는 현역함이다. ‘아무도 적진에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미군 원칙에 따라 언젠가는 되찾아 공식 퇴역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때문인지 푸에블로호는 북-미 관계의 부침에 따라 외교적 거래 또는 반환 촉구의 대상으로 떠오르곤 했다. 2000년대 초 북한의 반환 제의를 놓고 논의가 오갔지만 2차 북핵 위기로 무산됐고, 미 의회에선 때마다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연방법원이 최근 북한에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유족 등 171명에게 23억 달러(약 2조5800억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역대 미 법원이 명령한 북한 배상액 중 가장 큰 액수다. 이미 5억 달러 배상 판결을 받아낸 오토 웜비어 사망 사건처럼 앞으로 미국과 해외의 북한 자산을 압류해 배상액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가뜩이나 돌파구가 안 보이는 북-미 간 장기 교착 상태에는 악재가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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