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정부는 없다[오늘과 내일/홍수용]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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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가덕특별법’ 반대는 면책 위한 포석
‘국민 전체 봉사자’로서 책임 다하고 있나

홍수용 산업2부장
홍수용 산업2부장
‘공무원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되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공무원은 직무 수행 시 상관과 국민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게 국가공무원법 57조와 59조의 규정이다.

원래 공무원은 국민과 상관의 명령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전제로 상관의 명령은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최순실 사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미르재단 설립에 관여했던 선배 공무원이 곤욕을 치르는 걸 보면서 관료들의 생각이 바뀐 거다. 경제 부처 차관을 지낸 A는 공직을 떠나기 전 내게 “앞으로 공무원들은 국민과 상관의 명령 사이에서 수시로 갈등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때 확정한 김해 신공항안을 백지화하고 가덕도에 새 공항을 짓는 특별법이 지난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 처리 전 공무원들이 보인 행태를 보면 지금의 공무원들이 국민의 명령과 상관의 명령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사전 타당성 조사는 해야 한다”고 한 게 줄타기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그게 국토부 공무원의 소신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국토부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가덕신공항의 안전성 경제성 등을 검토한 보고서를 냈다. 가덕신공항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이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토부에 역할 의지를 가지라고 질책했고, 여당 의원은 국회의원이 정부 부처 차관직까지 겸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무원의 반대 목소리를 차단해 정권의 과제에 속도를 더 내려는 의도가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권의 무리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소신 있는 공무원들이 반대한 것처럼 비친다.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그런 드라마는 없었다. 첫째, 국토부가 사전 타당성 조사를 주장한 것은 사업 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사업이 잘 돌아가게 하려는 ‘충정’에서 나왔다. 사전 타당성 조사는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인데 이걸 건너뛰면 나중에 공사가 엉망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설명을 들은 국회의원은 “우리 마을 도랑을 쳐도 그렇게는 안 한다”며 국토부 제안을 흔쾌히 수용했다고 한다. 둘째, 나중에 공익감사에서 안전 문제가 거론되면 공무원으로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직무유기 논란을 피하기 위해 로펌에 자문했고, 그에 따라 책임을 다했다는 증빙자료로서 보고서를 국회에 낸 것이다.

국토부로선 직무유기 걱정을 덜었다고 안심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무원의 소신 행보 같은 건 없었다는 현실과 마주한 국민은 불안하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세금은 얼마나 더 필요한지, 나랏빚은 도대체 어디까지 느는지, 안전 우려가 있는 공항을 짓는 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질문하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없다. ‘신공항은 선거용이 아닌 국가의 대계’라는 청와대 말만 그저 믿으란 건가.

순리를 거스르는 정책은 자유의 옹호자라는 가면을 쓰고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정권에 의해 자행돼왔다. 이들은 정책 오류를 숨기는 그럴듯한 포장과 피를 끓게 하는 선동으로 국민 전체를 위협한다. 껍데기뿐인 공무원의 반대를 동력 삼아 정권의 독주는 심해지고 있다. 공무원법에 명시된 ‘국민 전체의 봉사자’라는 말을 공무원들이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 든다. 국민 전체로 봐서 가덕 신공항이 이로운지 공무원에게 물었더니 이 공무원은 “그런 건 우리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민 전체의 이익 같은 건 애초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


#국민#정부#가덕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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