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빈 의자는 종종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상징한다. 누군가 항상 있던 자리가 어느 날 텅 비어 있는 걸 본 순간, 그가 이미 멀리 떠나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가슴 시리게 깨닫게 된다.
망자를 추모하는 행사에서도 빈 의자는 단골 소품이다. 작년 10월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 명을 넘은 날, 워싱턴 내셔널몰 앞의 한 공원엔 2만 개의 간이 의자가 빼곡히 깔렸다. ‘채워져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의 책임을 느끼라고 마치 당시 백악관 주인에게 조용히 따져 묻는 듯했다. 이런 ‘빈 의자=상실’의 은유법을 가장 잘 쓰는 이는 다름 아닌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얼마 전에도 그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국민들을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식탁의 빈 의자를 보면, 아무리 오래전 일도 마치 방금 일처럼 다시 떠오르게 되죠. 그가 없는 생일과 기념일, 옷장 문을 열 때의 향기, 함께 즐긴 모닝커피…. 이런 작고 일상적인 것들이 그리울 겁니다.” 바이든은 젊었을 때 부인과 두 살배기 딸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냈고, 6년 전엔 장성한 아들마저 병으로 잃었다. 가족과 사별한 아픔에 누구보다 잘 공감하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위로였을 것이다.
지난주 미국은 코로나19 사망자 50만 명이라는 또 하나의 어두운 이정표를 세웠다. 사망자 수로만 보면 베트남전쟁이 9번 일어난 것과 비슷하고, 9·11테러가 6개월간 매일 발생한 것과 같은 충격이다. 워싱턴의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에는 양옆으로 150m 길이의 화강암 벽면에 5만8000여 명의 전사자 이름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빽빽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전사자 대신 코로나로 사망한 미국인의 이름을 모두 새기려면 이 긴 벽의 높이를 최대 26m까지 올려야 된다고 한다.
50만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도 충격이지만 미국인들에겐 단순한 숫자의 의미가 아니다. 상실의 슬픔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소중한 일상이 파괴됐다는 쓰라린 증거다. 유독 피해가 극심했던 뉴욕에선 지금까지 시민 300명 중 1명꼴로 바이러스에 목숨을 잃었다. 슬픈 사연은 굳이 신문을 뒤지지 않아도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우리 동네에서도 어느 미용사가, 40대 경찰관이, 아이들 학교 선생님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된 과정을 되짚어보면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지도자가 유별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뭐든지 세계 최고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감염병 전문가인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미국은 팬데믹에 가장 잘 준비돼 있는 나라라는 평가를 들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보다도 못했다”고 통탄했다. 이제 백신 개발로 국면 전환을 앞두고 있다지만, 아무리 빨리 정상을 되찾는다 해도 이미 비워진 50만 개의 의자가 다시 채워질 수는 없다.
뉴욕은 작년 가을 미국에서 가장 먼저 공립학교의 문을 열었지만 아직 절반 이상의 가정이 100% 온라인 학습을 택하고 있다. 그중 상당수는 바이러스에 목숨을 잃은 가족이 있거나, 그런 사례를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극도의 공포심과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경우다. 이 고통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기대도 있지만, 주변의 빈 의자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짓누르며 일상 회복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봄이 오고 있지만 미국인들의 ‘마음의 봄’은 그 어느 해보다 천천히, 또 조심스럽게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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