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1927년)는 버지니아 울프가 45세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1909년부터 1919년까지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군도에 있는 별장에서 램지 부부, 여덟 명의 자녀 및 별장에 초대된 손님들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등대로’는 줄거리 요약으로 포착하려 하면 지나치게 앙상해진다. 객관적인 사실들이 시간 순서대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이 우연적이고 무질서하게 그려지는 ‘의식의 흐름’ 기법 때문이다. 일견 평온해 보이는 일상세계의 심층에서 거칠게 넘실대는 상념의 사투들.
그 대신 인물들이 주로 관계 맺는 방식은 바로 ‘응시’다. 소설 속 관계는 대부분 대화가 아니라 시선을 통해서 드러난다. 릴리는 뱅크스가 자신의 그림을 본 것만으로도 그와 깊은 교감을 나누었다고 느끼고, 자신이 램지 부인의 손가락을 봄으로써 그녀의 내밀한 성역을 꿰뚫고 들어갔으며 그녀의 본질적인 정신에 닿게 되었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로 서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일까? 어쩌면 관찰하고 짐작하는 것 정도가 타인에 대해 알 수 있는 최대치일지도 모른다는 냉정한 사실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개인의 내면에 잠재된 깊은 불안을 드러내는 독특한 대화 방식에서 온다. 모든 인물의 의식에는 불안이 깊고 광대한 바다처럼 요동친다. 그런데 이 불안이 아주 깊어지거나 감당할 수 없는 지점으로 처박히려고 할 때마다 옆 사람과의 대화로 가까스로 끌어 올려진다.
이를테면 램지 부인은 갑자기 육체가 소진된 것 같은 피로감을 느끼면서 남편과 자신의 관계가 진실하지 못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실은 남편이 훌륭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사람 많은 곳에서 남편이 자신에게 의존하듯 다가왔을 때의 당혹감, 지붕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돈에 대해서 남편과 상의할 수 없다는 답답함 때문이다. 가장 완벽한 관계에도 흠이 있다는, 부인할 수 없지만 감당할 수도 없는 거대한 진실이 마음에 비집고 들어와 램지 부인을 비참하고 초조하게 만들었을 때, 다행히도 그녀는 우연히 지나가는 카마이클을 발견하고 이렇게 부른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카마이클 씨?”
‘등대로’는 이러한 불안의 미끄러짐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잠복해 있는 불안은 마치 깊고 어두운 바다 같고,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는 그 위에서 흔들리며 떠 있는 작은 배가 잠시 부딪치는 정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그것을 통해서 한 사람의 깊고 아득한 심연이 다른 누군가의 심연과 만나는 찰나가 얼마나 아득한지, 그래서 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알려준다. 불안의 실체는 영원히 붙잡을 수 없고 끝없이 미끄러진다는 사실은 막막하고 서글프지만, ‘등대로’를 읽는 일은 그렇지가 않다. 그 미끄러지는 순간에 반짝이는 물결의 아름다움이 이 소설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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