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6일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온 뒤 이렇게 발표한다. 남북 정상회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2018년의 ‘봄날’은 지금은 외교부 장관이 된 정 당시 실장이 전한 이 한마디로 시작됐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이 전언에 대한 의혹이 커졌다. 지난달 정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김 위원장이 실제 정 장관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김 위원장이 당시 정말 무슨 말을 했는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라는 얘기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정 장관을 수석으로 한 특사단을 1시간 정도 만났다. ‘비핵화’라는 단어는 썼다고 한다. 하지만 소식통들은 “무조건 비핵화를 하겠다는 게 아니었다”고 했다.
바로 “미국의 핵 공갈과 적대시 정책이 없다면 우리가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비슷하게 “군사적 위협이 중단되고 체제 안전 보장이 있으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말도 했다. 미국의 조치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지 않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당시 평양 방문 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말을 먼저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밝히지 않은 새로운 비핵화 입장을 김 위원장이 천명한 것으로 읽혔다.
당시 김 위원장의 실제 발언을 접한 정부 인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큰일 났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북한이 계속 해오던, 전혀 새롭지 않은 얘기를 가지고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을 오랫동안 상대해본 당국자라면 김정은의 이 ‘조건부’ 발언이 새로운 입장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2016년 7월 성명을 발표한다. “핵이 동원되는 전쟁 행위로 우리를 위협공갈하거나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하고 안전 담보가 실지로 이뤄진다면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실현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2017년 리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돼야 핵·미사일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정 장관에게 한 말과 놀랍게 똑같은 논리다. 2016년 성명에는 “명백히 하건대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라는 말도 포함됐다.
그래서일까.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선언에 ‘한반도 비핵화’가 명문화됐음에도 하노이 회담은 비핵화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한 채 결렬됐다. “미국은 협상이 진전될수록 김정은에게 핵 포기 생각이 있는지 의심이 커져갔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외교 소식통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재검토(review)에 두세 달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 대상에는 2018년 3월도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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