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코로나보다 집요한 정권 포퓰리즘… 퇴치 백신 나올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5일 03시 00분


포퓰리즘으로 나라 망쳐도 선거 이기는 게
대다수 국가가 겪는 민주주의 아이러니
반면 美는 선거로 포퓰리스트·선동정치 축출
4월 보선과 대선에서 우리는 어느 길로 갈까

이기홍 대기자
이기홍 대기자
집권세력이 장기집권에 생사를 걸고 포퓰리즘 정책을 악착같이 펼 때 1인 1표 투표제가 골간인 현대 민주주의 제도로 막아낼 수 있을까?

그리스, 베네수엘라 등 현대사의 경험이 들려주는 대답은 부정적이다.

배 밑창 나무를 뜯어 선실을 데워주는 격인데도, 환호하는 승객이 반대파보다 매번 숫자가 많았다. 나라가 기우는데도 선거에선 포퓰리스트 세력이 이긴다. ‘덜 가진 자’가 ‘가진 자’보다 많기 때문이다. 편가르기와 공짜의 위력은 이성으론 제어하기 어렵다. 경제가 완전히 거덜나기 전까지는 선거로는 포퓰리스트를 쫓아내기 힘든 것이다.

그나마 우파 독재자는 민중궐기로라도 축출할 수 있지만 좌파 독재자는 그런 걱정도 안한다. 보수진영에는 밤낮으로 거리에서 정권퇴진을 외칠 숙련된 직업 운동가도 거의 없다. 어렵사리 조국 사태 당시 광화문 집회같은 대규모 집회가 성사되면, 정권의 숱한 떡고물을 누려온 좌파네트워크 세력들이 총동원돼 서초동 집회같은 맞불을 놓는다.

드물게 선거로 포퓰리스트를 쫓아낸 경우도 있는데 지난해 미국 대선이 한 사례다. 사법부· 전문 관료· 언론 등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들이 파수꾼으로서의 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은 이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그리스 파판드레우의 3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마두로 정권 승계 같은 좌파 포퓰리즘 장기화 궤도냐, 미국처럼 정상적 공화제로의 복귀냐의 기로다.

문재인 정권은 예상대로 보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권의 매표 전략은 코로나보다 더 악착같고 전방위적인 전염력을 지녔다. 어떤 무리수도 개의치 않는다.그들의 사전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없다.

가덕도 해상에서 “가슴이 뛴다”며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짝짜꿍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은, 관객과 시청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개그맨 자신들은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잃지 않는 유머일번지 풍자 코너를 연상시킨다. 문 대통령이 훗날 노년말기에 선상 사진을 홀로 볼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오거돈의 못된 손 덕분에 부활한 신공항을 치적 1호로 자랑스레 기억할까.

여권은 재난지원금 속도전에 비판이 제기되면 선진국은 더한다고 반박한다. 위기에 돈 푸는 건 원칙적으로 맞지만 돈을 푸는 방법과 철학이 전혀 다름을 간과한 주장이다. 선진국은 재정을 풀어 경제 전체적으로 생산 부문에 힘이 실리도록 하는데 초점을 둔다. 투입 재정의 구체적 용처가 많다. 그냥 살포해서 소비해 버리는 형태가 아니다.

포퓰리즘 앞에서 무력한 게 민주주의인데 설상가상으로 전쟁·전염병 같은 시기에 선거가 치러지면 민의 반영은 더 어려워진다. 평상시라면 농사를 잘 지은 논과 망친 논의 차이가 확연할 텐데 산사태가 다 덮어버리니 정권의 초라한 성적표가 가려진다. 태풍 속의 승객들은 배가 침몰할까 두려워 선장에게 힘을 몰아준다.

지금 여당의 다수당 지위는 그런 어부지리의 결과인데도 칼을 휘두르는 데 조금의 절제도 없다.

6주 전 칼럼에서 여당의 검찰 수사권 박탈 기도를 경고할 때만 해도 일부 독자들이 너무 성급한 걱정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어느새 현실이 됐다. 국가 시스템의 근간을 바꾸는 일을 허접한 낙서 끄적이는 수준으로 속전속결해버린다.

윤석열 총장이 수사권 박탈에 격하게 반발하자 그제 정세균 총리는 “이게 행정가의 태도냐”고 질타했다. 윤 총장이 결국 사퇴하자 “정치검찰의 끝판왕”이라 성토한다. 전두환 정권이 학생들을 향해 “데모가 학생의 본분이냐”고 비난한 게 연상된다. 학원을 침탈해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게 해놓고, 학생답지 못하다고 꾸짖는 적반하장이었다.

차베스의 포퓰리즘을 지탱해준 건 석유였다. 문재인 정권의 석유는 삼성 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과 제조업·혁신기업들이다.

좌파세력이 아무리 구박해도 기업들은 각자 도생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극한 경쟁 속에서 거둬내는 실적 덕분에 정권이 아무리 실정(失政)을 남발해도 경제가 버티고 있다.

저유가 시대가 닥치자 베네수엘라는 사실상 망했다. 우리 기업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만 이런 악조건이 계속된다면 경쟁력을 잃는 건 한순간이다.

‘포퓰리즘이 매번 승자가 되는 사회’와 ‘선거가 포퓰리즘을 퇴치하는 백신 역할을 하는 사회’… 두 궤도 중 어느 곳으로 진입하느냐는 ‘깨어있는 중산층의 두께+사법부·언론 등 견제시스템의 제 역할+대안세력의 매력도’라는 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이 중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대목은 ‘대안세력’이다.

문 정권이 아무리 싫어도 국민의힘은 차마 못 찍겠다는 사람이 수두룩한 현실을 방치한다면, 포퓰리즘이 5년 더 횡행해 헤어 나오기 힘든 수준으로 ‘독이 든 꿀물’에 중독될 것이다.

야당 내의 낡은 세력들은 자신들이 좌파 재집권의 결정적 공신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퇴장해야 하다. 수명을 다한 별들이 폭발해 소멸하고 새 별이 생기듯 새로 태어나야 한다.

4월 보선과 내년 3월 대선은 좌파 포퓰리즘을 퇴치할 백신이 있는지를 결정할 중대한 실험장이다. 이 실험에서 실패한다면 백신 없던 시절 인구 대부분이 감염되고 나서야 비로소 바이러스가 사라졌듯, 좌파 포퓰리즘은 나라를 파탄내고 나서야 권력에서 내려올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코로나#정권#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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