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항상 조심스러워하고 존중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김 장관과 격한 언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영리병원 도입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인천 송도에 한정해 영리병원을 허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에도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묵묵부답이었다.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김 장관을 청와대로 호출해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과 삼자대면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된다”며 오히려 대통령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니, 밖에 나가 보면 사람들 얼굴도 다 다르게 생겼지 않소. 돈 있으면 성형 수술을 해서 예뻐지기도 하고,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자기 얼굴로 잘 사는데, 그것도 다 금지해야 합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영리병원 추진은 보류됐지만, 김 실장을 비롯해 당시 노무현의 국정 운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 얽매임이 없는 실용적인 사고를 높이 평가했다. 또 하나. 실수를 줄이기 위해 찬반 주장의 근거를 치열하게 검증해 접을 건 접고 추진할 건 하는 프로페셔널한 행정가의 면모를 그리워한다.
문재인 정부엔 과연 전문성과 행정가적 유능함이 있는지 의문이다. 부동산대책부터 이른바 ‘검찰·법원개혁’ 추진을 위한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임성근 판사 탄핵까지. 주요 과제들의 추진은 하나같이 좌충우돌해 왔다.
땜질식 부동산정책들이 쏟아진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부작용이 가시지 않고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징계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추진은 윤 전 총장의 사실상 정치 데뷔라는 정치적 풍선효과에 직면했고, 초유의 판사 탄핵 역시 헌법재판소의 심판대 위에 위태하게 올라가 있다.
목표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다 제쳐두더라도 그 목표가 하나라도 제대로 달성된 것이 있는지 선뜻 내세우기 어려울 지경이다. 성공한 것이 하나 있다면 여권의 물적·인적 자원을 총동원해 이룬 총선 승리와 180석 범여 거대 의석의 힘으로 무능한 국정 운영을 포장한 것 정도 아닌가. 이쯤 되면, 거여(巨與) 폭주가 문제가 아니라 무능의 문제를 짚어야 할 상황이다.
1인 독재 국가가 아니라면,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요건 중 하나가 토론과 설득의 과정이다. 유능한 정부가 되려면 과정도 매끄러워야 한다. 노 대통령에게 김근태 장관이 있었듯,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정부 내 반대 의견과 야당도 엄연히 존재한다. 과연 이 정부와 여당의 누가 부동산정책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치열한 논쟁을 했는지, 검찰총장 징계의 절차상 문제점에 대해 ‘노무현과 김근태식의 격론’을 벌여 본 적이 있는지 심각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 이것이 곧 무능의 문제를 풀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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