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 고려대 의대 마라톤(KUMA)이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의 의과대학 마라톤 동아리다. 졸업한 뒤 현업에 뛰고 있는 선배 의사들(OB)과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예비 의사 후배들(YB)이 의기투합해 결성했다. KUMA 탄생의 주역인 김학윤 김학윤정형외과의원 원장(62)에 따르면 그해 5월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대회에 OB들이 ‘고대 의대 달리는 의사들’로 출전해 100km 단체전에서 우승한 게 계기가 됐다. 5명이 모두 15시간 안에 들어온 단체 중 상위 3명 합산 기록이 좋은 팀이 우승하는 방식의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이다. 김 원장은 “우승 소식이 알려지면서 혼자 달리고 있던 OB, 달리기에 열정이 있는 YB가 모이기 시작했고 KUMA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KUMA는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서울 뚝섬유원지에서 만나 함께 달렸다.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마라톤은 물론 의사로서의 삶, 인생 등에 대해 서로 의견도 나눴다. 매년 2월 졸업생 환송회, 3월 신입생 환영회 겸 동아마라톤 출전, 5월 소아암환우돕기마라톤대회 출전, 6월 근육병환우돕기달리기 출전, 7, 8월 달리기심포지엄, 11월 송년회 및 시즌 마지막 대회 출전 등 연간 계획까지 세우고 체계적으로 활동했다.
2000년 말부터 달리기 시작해 마라톤 42.195km 풀코스 110번, 100km 이상 울트라마라톤 70번을 완주한 김 원장은 “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의사들이 달려야 일반 사람들도 ‘괜찮겠구나’ 하며 안심하고 달린다. 우리 관절은 적당한 자극을 받아야 건강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공부’를 위해서도 달렸다. 어느 순간부터 100km 이상을 달리는 울트라마라톤 마니아들이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왜, 어떻게 다쳤는지를 알아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다. 2001년부터 울트라마라톤을 공부하며 훈련했고 2002년 100km를 완주했다”고 했다. 그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을 하다 다친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 2012년부터 철인3종을 시작해 킹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12번 완주했다.
OB 주장을 맡고 있는 남혁우 남정형외과 원장(50)은 수술 직전에까지 갔던 목 디스크 치료를 위해 2013년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운동 마니아가 됐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진료를 보고 척추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골프 등 비대칭적인 운동을 하다 보니 목 디스크가 왔다. 선배 의사들이 달리면 좋다고 했다. 진짜 기적적으로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달리기의 신비함에 매료됐다”고 했다. 그는 2013년 동아마라톤을 시작으로 풀코스를 33회 완주했다. 달리기에만 집중하면서 근육과 인대 등에 경미한 부상이 오자 마라톤 부상에 대해 연구했고 철인3종으로 부상을 떨쳐 냈다. 남 원장은 “달리기가 힘들면 수영, 수영이 힘들면 사이클, 이렇게 돌아가면서 운동을 하면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마라톤만 할 경우 똑같은 동작으로 달리다 보니 근육, 인대에 무리가 간다. 며칠 쉬면 회복이 되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달리면 부상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2005년부터 달리기 시작해 풀코스 350회, 울트라마라톤, 트레일러닝까지 섭렵한 서승우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58·YB 지도교수)는 “마라톤으로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수술할 때 집중력이 높아졌다. 척추측만 관련 수술의 경우 10시간이 넘게 걸리는데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YB 주장을 맡고 있는 최정호 씨(24·본과 2년)는 “달리면 기분전환이 돼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고 했다. 이선호 씨(23·본과 3년)는 “예과 땐 몰랐는데 본과에 올라오면서는 체력이 좋아져 공부에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 씨와 이 씨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며 모여서 달리는 횟수는 줄었지만 매주 3회 이상 5∼10km씩을 달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많이 달리면 관절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KUMA 의사들은 100km 울트라마라톤까지 완주하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전국적으로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따르는 운동 마니아가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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