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자전거를 타러 한강으로 갔다. 올겨울은 그리 춥지 않아서 이번이 벌써 열세 번째 라이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곳곳마다 그동안 헐벗은 가지만 있었던 겨울나무에 새싹이 나기 시작했으니 봄이 오고 있다는 전조로 보였다. 버드나무 새싹을 보고 다음 주면 개나리, 철쭉꽃이 피기 시작할 것이고, 한 달 안에 벚꽃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쁜 생각에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봄이 오는 다른 징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늦추게 됐다. 바로 붐비는 한강 자전거길이다. 연초에는 날씨가 추워서 극성 라이더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어 신나게 탔지만 지난 주말부터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다 보니 자전거길이 난리도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사고도 목격하게 됐다. 한 라이더가 코피를 줄줄 쏟으며 정신을 잃고 길가에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사실 자주 보는 장면이긴 하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워낙 다양해 선수급인 동호회 라이더부터 첫 걸음마를 떼는 ‘아기사슴 밤비’처럼 비틀거리는 왕초보까지 있다. 주위를 살피지 않고 무단횡단하거나 아예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산책을 즐기는 무개념 보행자도 적지 않다. 어찌 보면 사고가 더 많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해 나와 함께 자전거를 타던 친구 한 명이 충돌사고를 당했다. 가해자가 내 친구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달아나 뺑소니로 볼 수밖에 없었다. 무릎이 많이 까졌는데 심하게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경찰에 신고하러 갔는데 블랙박스도 없고 목격자도 없어 가해자의 신분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 친구는 많이 억울해했다. 2년 전에도 사고를 겪은 데다 가해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당시 친구가 앞에서 천천히 자전거를 모는 사람을 발견해 관례대로 “지나가겠다”고 외치고 아주 넓게 앞지르려고 하는 사이 상대방이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부딪치고 말았다. “괜찮냐”고 물어보자마자 뒷목을 잡는 상대방에게서 술 냄새가 풍겼다. 경찰에 신고하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술에 취한 상태로 자전거를 탄 것이었다. 그래도 경찰은 음주운전은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뒤에서 추월한 내 친구를 가해자로 판정했다.
나는 변호사가 아니라서 법은 자세히 모르지만 상식과 다른 상황이 많이 벌어지곤 해 놀랄 때가 많다. 과거 자전거 인구가 많지 않았을 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법을 새로 만들거나 정비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각종 시험을 통과하고 도로주행 연수까지 받고서야 운전에 나선다. 하지만 자전거는 아무런 준비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직행조차 하지 못하는 ‘초보 라이더’를 볼 때면 나 역시 응원하고 싶다. 하지만 분명 서울 한강 자전거길은 적절한 연습장은 아니다. 또 우려되는 것은 보행자의 인식이다. 차도에서는 언제든 차가 올 수 있다는 인식을 하지만 자전거 전용도로에 대한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 자전거를 탈 때마다 주의하지 않고 마음대로 건너는 보행자들을 본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는 자동차와 달리 블랙박스가 없어서 사고가 나면 원인과 과실 유무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자전거는 번호판이 없으니 사고가 난 상황에 뺑소니로 도망가도 잡힐 가능성이 낮다. 이런 이유로 자전거 사고는 자동차 사고보다 더 까다로운 면이 많다. 라이더가 사고를 당했을 때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이런 특성을 잘 고려했으면 한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한반도를 누비며 너무나도 예쁜 장면과 풍경을 한껏 눈에 담았다. 한국의 자전거 인프라는 훌륭한 수준이라 관광객 또한 많이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자전거 인구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테니 정부가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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