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고영건]‘기쁨의 기술’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3일 03시 00분


역경 속 놀이 즐긴 리디아인들
고통 극복 위해 일상 속 ‘재미’ 보태면
두터워진 유대감만큼 기쁨도 커진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한국임상심리학회장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한국임상심리학회장
코로나19 시대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전보다 ‘기쁨’을 맛보기가 더 힘들어진 것이다. 대학 신입생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사실 지금은 어느 대학교에서도 신입생 특유의 희망에 찬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 블루’가 대학 캠퍼스에서도 주요한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됐다. 코로나 블루는 주로 기쁨을 경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보이는 증상이다.

코로나 신입생뿐만 아니라 이 시기를 보내는 모든 이에게 절실히 필요한 지혜 중 하나는 바로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기쁨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영화 ‘버킷 리스트’(2007년)에는 흥미로운 이집트 신화가 나온다.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도착했을 때, 신은 두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이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는가?”다.

심리학에서는 쾌감이나 만족감보다는 기쁨을 상대적으로 더 성숙한 감정으로 본다. 왜냐하면 쾌감이나 만족감은 고통을 배척하는 반면에 기쁨은 고통까지도 기꺼이 수용하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의 아픔을 끌어안을 줄 모르는 동시에 타인의 고통도 외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시대에 스스로 기쁨을 발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해 줄 수 있는 활동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게임(놀이)’이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지금의 터키 지역에 해당되는 리디아 왕국의 아티스왕 시대에 대기근이 발생한 적이 있다. 이 고통스러운 시기에 리디아 사람들은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게임들을 고안해냈다. 그때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주사위놀이, 공기놀이, 공놀이다. 이처럼 게임은 태생적으로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는 데서 경험하게 되는 기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게임 혹은 게임의 요소가 가미된 활동은 우리를 현실 세계와는 다른 특별한 세계로 이끌어준다. 이것을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매직 서클’이라고 불렀다. 게임이 사람들을 매직 서클로 이끄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우리나라 축구팀이 16강 진출을 확정짓던 순간, 전국 각지에서는 보통 때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졌다. 장례식장에서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을 뿐만 아니라, 신성한 교회와 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바로 그 옛날 리디아 사람들이 대기근이라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게 된 비결이기도 하다.

게임을 한다고 해서 늘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통해 기쁨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행복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게임화 기법)’의 지혜가 필요하다. 행복 게이미피케이션은 일상생활에 놀이와 재미가 가미된 활동을 접목해 ‘기쁨’과 같은 최상위의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팍팍한 생활 속 소소한 재미와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

우선 ‘스몰게임’과 ‘빅게임’을 구분하는 것이다. 스몰게임은 중독을 유발하고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성숙한 심리적 기제를 바탕으로 하는 빅게임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스몰게임에서 사람들은 게임을 시작하고 종료하는 시기를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빅게임에서 사람들은 게임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나 홀로 게임’보다는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게임’이 더 좋다.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는 게임의 원형은 어린 포유동물들이 이리저리 엎치락뒤치락하는 난투극 놀이다. 난투극 놀이가 기쁨을 주는 이유는 공감적 유대를 강화해주기 때문이다. 즉, 놀이를 통해 ‘관계’가 선사하는 기쁨을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아하게 승리하는 법과 기품 있게 패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아하게 승리하고 기품 있게 패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관계의 기쁨을 맛보기보다는 오히려 관계를 해치게 된다.

코로나19 시대에 필요한 인생의 지혜 중 하나는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물할 줄 아는 것이다. 일상에 놀이와 재미를 적용하는 여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상호작용으로 이 두 가지 인생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 줄 수 있다. 단, 이를 위해서는 ‘행복 게이미피케이션’의 지혜가 따라야 할 것이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한국임상심리학회장
#리디아인#고통 극복#일상 속 재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