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캐나다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별세했을 때, 그가 주연한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다시 찾아보게 됐다.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활약하던 플러머는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에 참가하면서 ‘폰 트랩 대령’ 역할에 깊이와 복잡함을 더했다고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말한 적 있다. 생전 플러머는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는다 했지만 가족 영화로서 보기 드문 스케일의 웰메이드 영화라 인정했다.
지난 몇 년간 이 작품을 본 적이 없는 이들이 나에게 무슨 영화냐고 물었을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이들이 잔뜩 나오는 반(反)나치주의 뮤지컬’이라고 답한 적이 몇 번 있다. 제대로 설명하자면 줄리 앤드루스가 ‘마리아’라는 견습 수녀로 나오는데 원장 수녀의 권유로 퇴역 해군 대령의 아이들 일곱 명을 돌보는 가정교사로 가는 데서 시작한다.
아내 잃은 슬픔에 대저택에서 음악과 웃음을 추방시킨 대령은 아이들에게 유니폼을 입혀 군대식 훈련만 시키는데, 마리아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옷을 지어주고, 잘츠부르크 지역을 데리고 다니면서 ‘도레미 송’ 등 노래를 가르친다. 대령은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마음이 녹고, 마리아를 향한 마음도 바뀌어 낭만적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다.
영화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때쯤 시작하는데 나치들이 대령을 현역으로 불러들일 때 위기가 온다. “거절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합류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결국 가족이 합창 콩쿠르에 나가는 날 밤, 알프스를 넘어 극적으로 망명한다는 내용이다.
56년 된 영화의 스포일러를 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실존 인물인 마리아 폰 트랩이 미국에서 쓴 회고록 ‘트랩 가문의 가수들 이야기(The Story of the Trapp Family Singers)’도 있어 엔딩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영화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용을 다 알아도 순간순간의 감정이입으로 즐거우면서도 긴장되고, 동시에 슬프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장면들은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스토리의 전개를 도우면서 개연성 있게 나온다. 그리고 배우들이 나중에 다시 더빙을 했을지라도 촬영 현장에서 립싱크가 아닌 발성을 하면서 노래 연기한 것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한동안 나치주의와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기만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미국 전 대통령이 신나치주의자들과 백인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행진하는 이들을 가리켜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는 식의 발언까지 하는 등 이상하게 선이 무너지는 요즘이다. “그들과 합류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살던 집, 사랑하는 나라마저 버리고 망명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감상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