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역기피자의 인생[임용한의 전쟁사]〈153〉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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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빈민자 합숙소에서 살던 한 청년이 황급히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섰다. 그가 숙소를 떠난 이유는 병역기피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21세가 되면 징집 대상이 되어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피했던 것이다. 그의 본적지 린츠시에서는 청년을 병역기피자로 수배했다.

이때 청년은 고국을 떠나 독일 뮌헨에서 살고 있었다. 외국에 있다고 안심했지만, 당국은 외국에서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술집에서 그림엽서를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이 청년의 거주지를 찾아냈다. 뮌헨 경찰에 협조를 구했고, 형사가 찾아와 그를 체포했다.

이 병역기피자가 아돌프 히틀러이다. 만약 그때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로 송환되어 오스트리아군에 입대했다면 우리가 아는 나치당 당수 히틀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사관이 이 청년을 불쌍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본국 송환을 보류하고 독일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호의를 베풀었다. 우방이긴 하지만 독일이 오스트리아의 국방력 강화에 절실하지는 않았으므로 법정은 가난하고 몸이 약해서 병역을 수행할 수 없다는 히틀러의 변명에 손을 들어 주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히틀러는 독일군에 자원입대한다. 바로 전에 병역기피자였던 사람이 그것도 타국의 전쟁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무슨 마음인지 그는 입대를 신청했고 통과됐다. 그의 운은 계속된다. 1차 세계대전은 엄청난 살육전이었다. 개전 초 최전선에 투입된 병사가 종전까지 살아서 돌아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히틀러가 최초로 배속된 연대도 금세 연대장을 포함해 3분의 2를 잃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철십자 훈장까지 받았다.

외국인에다가 중학교 졸업의 학력에 아무런 사회적 경력도 없던 히틀러가 대중선동가에서 정치지도자로 성장하는 데 유일하게 뒷받침이 되었던 경력이 바로 이 참전 경력이었다. 히틀러가 병역면제와 외국인의 특권에 만족했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인생이 아이러니인 것은 맞는 듯하다.

임용한 역사학자
#병역기피자#징집#독일#아돌프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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