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그린 첫 그림이 뭔지 아는가? 악마의 공격으로 고통받는 성 안토니우스를 묘사한 바로 이 그림이다. 놀랍게도 12세 무렵에 그렸다. 고작 열두 살밖에 안 된 어린이가 어떻게 이런 주제를 이토록 능숙한 솜씨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미켈란젤로는 스스로를 조각가로 여겼지만 초기에 화가로 훈련받았다. 13세 때 피렌체의 유명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공방에 들어가 회화를 배웠으나 곧 스승을 능가했다. 이 그림은 그가 공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토니우스는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사막으로 떠나 35년 동안 금욕적인 은둔 생활을 한 3세기 이집트의 수도사다. 수행에는 언제나 고난과 유혹이 따르는 법. 악마들이 나타나 그를 유혹하고 위협했는데, 화가는 이 장면을 포착해 그렸다. 사실 이 그림은 독일 판화가 마르틴 숀가우어의 흑백 판화를 모방한 것이지만 그대로 베낀 건 아니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듯, 어린 화가는 자신의 생각을 반영해 원본을 변형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추가해 독창적인 작품으로 재창조했다. 피렌체 아르노강 계곡을 닮은 아래 풍경과 물고기를 닮은 괴물에 그려진 은빛 비늘은 원본에 없던 부분이다. 생동감 있는 표현을 위해 소년은 수산시장에서 물고기를 관찰했고, 성인도 더 단호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팔과 옷자락이 잡아끌리고, 매질을 당하지만 성인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자신의 신념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실제로도 성인은 담대한 용기로 악마를 물리쳤고, 존경받는 수도 생활의 선구자가 되었다.
누구나 유혹의 순간을 만난다. 흔들리고 갈등하고 고뇌하니까 인간이다. 악마는 천사의 얼굴로 유혹할 수도, 괴물의 모습으로 협박할 수도 있다. 악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면 결국 파국을 맞는다는 것. 5세기 전 살았던 열두 살 천재 소년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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