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21세 백인 남성의 연쇄 총격으로 한국계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숨졌다. 범행 다음 날인 17일(현지 시간)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총격범은 범행 동기에 대해 성적 욕망과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인 데다 범행 전 ‘아시아인을 다 죽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아시아계 단체는 가중처벌이 가능한 “증오 범죄로 수사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 미국 전역에서는 중국 우한이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지목되면서 아시아인 전체가 증오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코로나 확산이 본격화된 지난해 3월 중순 이후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 범죄는 하루 평균 11건씩 신고되고 있다. 이 중 중국계 피해자가 42%, 한국계는 14.8%다. 아시아인 때문에 백인이 피해를 본다는 전근대적인 황화론(黃禍論)을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상황이다.
인종 혐오는 나쁜 정치가 부추긴 책임이 크다. 백악관 대변인은 “전임 정부가 코로나를 ‘우한 바이러스’로 부른 유해한 수사(修辭)가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켰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막말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문제가 됐다. “중국이 미국을 강간한다”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중국의 값싼 노동력에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백인 노동자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해 지지를 얻었다. 이렇게 뿌려 놓은 막말들이 증오의 싹을 틔워 사회 불안으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새로 출범한 미국 행정부가 증오 범죄를 규탄하고 나선 점은 다행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총격 사건에 대해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지난주 코로나 1주년 대국민 연설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증오 범죄를 멈추라”고 호소했다. 미국 각계 인사들도 “아시아 증오를 멈추라”며 아시아계 공동체를 향해 연대의 뜻을 보내고 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감염병과 같은 위기가 타락한 정치와 만났을 때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분열의 정치로 병든 사회는 밖으로부터의 위협에 제대로 대처하기는커녕 무고한 시민의 희생만 낳을 뿐이다. 인종적 다양성은 미국 힘의 원천이자 사회 갈등의 요인이기도 하다. 통합의 리더십과 건강한 시민성으로 인종 갈등의 상처를 봉합하고 민주주의 종주국의 저력을 되찾기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