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재임 초기 LH가 서울에 집 지을 뜻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LH의 서울 공급 물량은 1년에 1200채 정도였다. ‘서울이 얼마나 큰데 이것밖에 안 짓나?’ 변 사장은 LH 공급 물량을 10만 채로 늘렸다. 다만 실제 그만큼 공급한 건 아니고 직원을 몰아쳐 짜낸 ‘목표’였다. 그는 사업이 되도록 잘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변 장관은 공공 주도 공급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국토부의 수장이 됐다. LH 사장 때처럼 직원들을 압박해 물량을 짜냈다. 전국 83만 채 공급 목표를 한 달 만에 만들어 ‘획기적 2·4공급대책’이라고 포장했다. ‘사업이 되도록 잘하겠다’는 돌파정신도 그대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2·4대책을 ‘변창흠표 정책’이라고 부를 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이해 못 할 점은 문 대통령이 12일 LH 투기 의혹에 책임이 있는 변 장관을 단번에 자르지 않고 2·4대책의 기초작업까지 끝내라며 어정쩡하게 경질한 대목이다. 2·4대책은 땅 없이 일단 사업을 시작하고 보는 ‘공급 구상’이다. 사람들 사이에 믿고 사업을 맡겨도 되겠다는 공감대가 생겨야 머릿속 구상은 실제 공급이 된다. 대책을 제대로 추진할 생각이라면 책임자를 빨리 바꾼 뒤 정책을 손질해 구멍 난 신뢰를 메워야 했다.
‘어정쩡한 경질’의 이유는 첫째, 대통령이 변 장관을 너무 아낀 나머지 마무리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둘째, ‘변창흠표 정책’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해 정책 실패 시 책임을 변 장관에게 돌리기 위해서, 셋째, 임기 후에나 나올 실제 물량에는 관심이 없고 시간을 끌 필요가 있어서 등으로 추정된다.
한 보수 경제학자는 사람을 믿고 쓰는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일 것이라며 첫째 추정에 무게를 실었다. 글쎄, 대통령이 2월 업무보고 때 ‘변창흠표 대책’이라고 한 것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겼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장관을 경질하는 자리에서까지 ‘변 장관 주도로 추진한 대책’이라고 했다. 국가의 핵심 정책이 무너질 판에 정책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한 셈이다. 이게 단지 한 개인을 아꼈기 때문인지 의문이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때 나온 24번의 부동산대책 중 ‘김현미표’가 있었나.
2·4대책의 핵심인 ‘공공 주도 개발’은 변 장관만의 아이디어도 아니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설계자인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도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공공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결국 정책 실패에 선 긋기, 분노가 줄어들 때까지 필요한 시간 벌기가 어정쩡한 경질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간이 중심이 돼 집을 짓는 건 지하철 공사 같은 것이다. 길을 막고 땅을 파는 과정에선 통행이 불편해지지만 나중에 모두가 편익을 누린다. 일부에게 집중되는 과도한 개발이익과 집값 급등에 눈을 감자는 게 아니다. 공급의 중심축을 민간에서 공공으로 바꿀 수 없는 만큼 민간에서 물량이 나오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LH를 토공, 주공으로 쪼갠다고 없던 신뢰가 생기는 게 아니다. 한 공무원의 말을 들어보면 현 정부는 민간 공급 확대 아이디어에 귀를 닫고 있다. “일정 기간 집값이 오르는 걸 감수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민간 공급을 늘릴 유인책도 검토할 수 있지요. 그런데 비판이 나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요?” 2·4대책은 껍데기만 남긴 채 그냥 갈 것이다. ‘변창흠표 부동산’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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