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 끼 함께할 시간 없이 어떻게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릴 수가 있습니까?” 보호자는 나에게 따져 물었다. 그녀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폐암 환자의 부인이었다. 워낙 헌신적으로 환자 간병을 했던 보호자였기에 허망함이 더 컸을 것이다.
어쩌면 암 투병하며 힘들어하는 남편과 약속했을지 모른다. 암이 나으면 같이 여행도 가고, 맛있는 밥이라도 먹자고. 그때까지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고. 그러나 환자는 세상을 떠났고 부인은 남편과 따뜻한 밥 한 끼 함께하지 못한 것을 원망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20년 넘게 살아온 부부가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못 한 것이 원망으로 남을 정도라면, 부부로 살아오며 먹었던 그 수많은 끼니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곤 한다. 고등학생 때에는 대학만 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취직을 해야, 취직하고 나니 결혼을 해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야 행복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는데 덜컥 암에 걸렸고 몇 달밖에 안 남았다고 의사가 말했다. 행복해지려고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에서 행복해지는 시점은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언젠가는 행복한 내일이 올 것이라는 희망 속에 오늘 하루를 참아내며 사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다들 어느 정도는 그렇게 힘든 하루를 견디며 산다. 문제는 그런 습관이 오래 고착화되어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는 것이다.
평온, 안락, 즐거움, 사랑과 같은 긍정적 감정은 나중으로 미루고 긴장, 노력, 경쟁, 준비,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으로 오늘을 채우는 일이 지속되면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습관이 된다. 어쩌다가 긍정적 감정이 찾아와도 이를 행복으로 느끼지 못하게 되고, 어느 순간 행복이 불편한 감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번 행복은 그냥 보내고 더 참고 기다리면 더 큰 행복이 올 것만 같아진다. 행복을 느끼는 역치는 점점 높아지고 행복을 느끼는 빈도는 줄어든다. 그러면 겉으로는 행복하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도 모르게 행복해지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은 지금 내 앞에 행복이 찾아와도 그것이 행복인 줄 느끼지 못한다. 내일의 더 큰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만 한다. 따뜻한 밥 한 끼 함께할 시간이 없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작은 것에서 지금의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자주 해야 행복 안테나가 예민해지고 행복 근육이 단련되며 오늘이 행복해지 않을까? 행복도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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