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제3지대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0일 03시 00분


역대 대선에서 1, 2당 아닌 제3후보 당선된 적 없어
野, 치열한 노력 없이 ‘윤석열 입당’만 기다릴 건가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의 파장은 컸다. 대선후보 지지율이 수직 상승하면서 선두권 명단을 갈아 치웠다. 야권 후보군이 지리멸렬하다 보니 여권 일변도로 흐르던 대선 구도가 요동쳤다. 야권 진영에선 내년 대선에서 해볼 만하다는 기대감이 판을 흔들었다. 윤석열이 대선 지형을 뒤흔든 ‘메기’ 역할을 한 것이다.

윤석열 지지율의 고공 행진은 문재인 정권의 검찰 죽이기에 맞선 결기에서 나왔다. 검찰개혁을 방패 삼아 권력형 비리 수사를 뭉개려는 의도가 뚜렷해지면서 공정과 정의 가치 훼손에 반발한 중도 세력까지 가담한 것이다. 겉으로는 친문 세력의 대변자를 자처한 법무부 장관들과 검찰총장이 벌이는 양자 대결 구도였다. 여기에 압도적 의석수만 믿은 여권의 국정 폭주가 투사되면서 응어리진 민심이 분출한 것이다. ‘윤석열 현상’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현상은 어디까지나 현상일 뿐이다. 윤석열 현상이 끝까지 윤석열 지지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정권의 위선과 불공정 행태에 대한 불만을 이끌어낸 마중물이 됐다고 해서 윤석열의 정치적 미래가 탄탄대로는 아닐 것이다.

이제 윤석열에게 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검찰의 시간’은 끝났다. 앞으로 마주칠 ‘정치의 시간’은 180도 다른 세계다.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끌어야 하는 리더십이다. 관건은 민심이다.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그 배를 뒤집어버리기도 하는 게 민심이다. 민심의 바로미터인 지지율도 그렇다. 그 숫자를 부동의 지지층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 거품을 걷어내고 다지는 일이 정치의 영역이다. 일부 호사가들은 벌써부터 윤석열 진영의 독자 세력화를 거론하는 모양이다. 문 정권과 각을 세웠지만, 이전 정권을 겨냥한 적폐수사로 인해 제1야당과도 노선이 다르니 ‘제3의 길’을 가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제3지대가 성공한 적은 없었다. 정몽준, 고건, 문국현, 안철수, 반기문 등이 대표적인 제3후보였다. 이들은 막판에 후보 단일화를 하거나 독자 출마를 했지만 모두 본선에서 실패했다. 기성 정치에 실망한 바람이 제3지대 돌풍을 일으켰지만 승리의 보증수표는 아니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원내 1, 2당의 조직력과 기반은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을 외면한 채 바람만 좇을 순 없다. 윤석열처럼 정치적 기반이 전무했던 미국의 윌슨과 아이젠하워도 결국 민주당과 공화당에 들어가서 대선 승리를 했다. 우리나라처럼 뿌리 깊은 양당 구도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3지대 무용론이 야당의 우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 비호감도가 지난해보다 개선됐다고 해도 정부 여당 실책에 대한 반사이익 덕분일 것이다. 더 과감한 쇄신과 치열한 대여투쟁도 없이 “무조건 입당하라”고 하면 윤석열이 수긍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아이젠하워를 지지하는 전국적 시민조직은 1952년 대선을 앞두고 ‘나와라 아이젠하워(Draft Eisenhower)’ 운동을 벌였다. 아이젠하워는 이를 기반으로 민주당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공화당 내 강경 우파 세력에 반감이 큰 국민 다수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막판에 공화당이 영입한 형식이지만 아이젠하워가 사실상 공화당을 접수해 본선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봐야 한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입당’만 기다리고 있다가는 또다시 해체의 길로 내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대선#제3후보#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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