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에 안식년 가 있는 외국인 동료 교수가 연락을 해 왔어요. 서울의 모든 외국인 근로자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게 사실이냐고요. 그렇다고 했더니 서울에서 교수를 계속 해야 하는지 환멸을 느낀다고 했어요. 많이들 마음에 상처를 입었지만 이제라도 서울시가 행정명령을 거둬들여 다행입니다. 외국인 교수들이 소식을 듣더니 서울 시민과 외국인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자진해서 검사를 받겠다고 하네요.”(구민교 서울대 학생처장)
▷말 많던 서울시의 ‘외국인 근로자 코로나 진단검사 의무화 행정명령’이 이틀 만에 철회됐다. 서울시는 17일 발동했던 이 명령을 고위험 사업장에 대한 검사 권고로 변경한다고 어제 밝혔다. 밀접, 밀집, 밀폐 즉 ‘3밀(密)’ 근무 환경의 노동자만 검사받도록 권한다는 것이다. 사흘 동안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가 “불공정한 명령”이라고 물꼬를 튼 후 주한 외국대사들이 인종 차별이라며 외교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주한 외국상공회의소와 서울대도 철회를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에 착수했다.
▷당초 서울시가 모든 외국인 근로자에게 검사를 의무화한 근거는 외국인 감염률 추이였다. 지난해 말 2%대이던 외국인 감염률이 올 들어 6%대로 올랐다는 이유였다. 밀집생활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 집단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도 했다. 도를 넘은 행정편의주의였다. 서울의 외국인 근로자 7만 명 중에는 밀집생활과는 무관한 외국계 기업의 임직원과 외신기자도 있다. 글로벌 인재의 유입을 막고 국가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우려를 낳았던 이유다. 서울시는 정부의 공식 철회 요구에 어제 오후 늦게 입장을 바꿨다.
▷이번 명령과 철회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차별이라는 의제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1978년 채택된 유네스코의 ‘인종과 인종적 편견에 관한 선언’의 제1조 1항은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에서 평등하며 그들 모두는 인류에 없어서는 안 될 일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인권위도 어제 “이주민을 배제하거나 분리하는 정책은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을 낳고 인종 혐오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인종 차별 철폐의 날이다. 1960년 3월 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렸던 통행법 반대 평화집회를 기리는 날이다. 이동할 때마다 백인에게 통행권을 제시해야 했던 유색 인종의 설움을 역사에서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날이다.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 차별을 과거에도 지금도 겪는 우리가, 행정편의주의에 매몰돼 외국인을 차별하는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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