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인아]‘나’는 과연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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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기 열정 일에 대한 사명감 있다면
‘죽음의 계곡’ 만나도 흔들리지 않아
어려움에 휘청거릴 때마다 되새기자
‘나는 신뢰할 만한 파트너인가’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후배가 많이 생겼다. 그들이 종종 고민이 있다며 찾아오는데 그럴 때 나는 기꺼이 상담사가 되어 준다. 나도 겪고 고민했던 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엊그제도 후배 하나가 찾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고서도 감정이 북받치는지 한참 뜸을 들인 후 말문을 열었다. 요는, 실력을 인정받으며 맡은 일을 잘하고 있었는데 팀장이 새로 오면서 입장이 어려워진 거다. 직급은 팀장이 위지만 해당 업무에선 오히려 후배가 전문가였는데 팀장은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후배가 윗분들께 칭찬을 받거나 관심을 받으면 팀장인 자신이 무시당했다며 엉뚱한 일로 분풀이를 했다. 한 성질 하는 후배는 팀장을 들이받아 버렸고 위세에서 밀린 후배는 팀에서 밀려나 홀로 일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 함께 일했던 협업 부서에서 그를 계속해서 찾는다는 것, 그의 제안에 따라 시도한 일들이 성과가 좋다는 것, 계속 그에게 기획서와 제안서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너무 억울하고 이제 고참이라 진급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내가 말했다. 최악은 아니네, 희망이 있네. 일하는 사람에겐 일이 핵심이자 ‘빽’인데 계속해서 찾는 이가 있고 일이 이어진다는 건 기회가 있다는 뜻이라고. 또 직급은 시간 앞에선 큰 게 아니니 계속 너를 찾고 이름이 불릴 수 있도록 성과를 내며 너의 시간을 기다리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일하는 사람에겐 일이 구원이라고. 그러니 흔들리지 말고 일에 집중해 꾸준히 퍼포먼스를 내라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을 법한 일인데 여기서 잠깐 화제를 돌려 스타트업 얘기를 해보자. 정확히는 ‘투자자들은 수많은 스타트업 가운데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일에 관한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2019년 코엑스에서 열린 ‘360° Seoul’ 행사에서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업자가 문제에 얼마나 꽂혔느냐가 중요하다. 창업 초기엔 누구나 열정적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창업 후 3∼5년이 되면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빠져 어려움을 겪는데 이때 창업가가 얼마나 이 문제에 꽂혀 있느냐가 향후 성패를 좌우한다. 그래서 창업자가 끝까지 해결책을 찾아나갈 준비가 돼 있는지를 본다”라고. 또 김호민 스파크랩 공동 설립자는 ‘팀’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팀이 핵심 역량을 갖췄는지를 보는데 보통 세 가지를 꼽는다. 시장과 사람, 사명감이다. 투자를 못 받더라도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라는 사명감이 엿보이면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 투자는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이 얘기가 꼭 스타트업에만 해당될까? 아니다.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된다. 언젠가부터 나는 일하는 사람은 모두 스타트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직장인인가, 창업가인가는 부차적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아이디어로 능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며 조직에 기여하고 스스로도 성장하는 것. 진심으로 애써서 성과를 내고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되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죽음의 계곡’인데 열심히 해도 결과가 좋지 않거나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 등 자신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고 앞선 후배의 예처럼 주위 사람들이 훼방을 놓는 경우, 심지어는 사술(邪術)로 나의 기회를 앗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누구라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럴 때 투자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어떨까? 내가 투자자라면 과연 나에게 투자를 할지 말이다. 그러면 다시 초심이 생각나며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마음으로 한 발짝 더 내딛는 거다. 투자자는 그런 마음의 유무를 꿰뚫어 보고 함께할 만한지 결정한다고 하지 않나.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아님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나의 문제일 뿐이다. 어려움을 뚫고 계속 갈 만한 사람인지가 중요한 기준이랬다. 나도 다시 한번 새긴다. 어두운 벽 앞에서 휘청거릴 때 투자자라면 이런 내게 투자를 할까라고 물어보기!

곧 선거다. 재·보궐선거지만 대선을 1년 앞두고 치르는 큰 선거다. 각 당의 후보들은 무슨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겠다고 뛰어들었을까? 무얼 보고 뽑아야 제대로 된 시장을 가질 수 있을까?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투자자의 입장이 되어 어떤 인물에게 투자할지를 기준으로 투표하면 어떨까? 제발 딴마음 먹지 않고 일에 열심인 시장이 당선되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 같은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스타트업#사회생활#사명감#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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