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좋아한다. 한 방을 썼던 언니의 영향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라디오를 달고 살았다. 거실의 TV가 온 가족에게 속한 미디어라면 내 방의 라디오는 내게 속한 것이었다. 라디오는 내 방의 배경음이 되었다. DJ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분명 듣기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라디오 특유의 친밀감, 연대감이 있었다. TV의 진행자는 스타였지만 라디오의 진행자는 우리 DJ였고, TV의 시청자들은 관객이었지만 라디오의 청취자들은 가족이었다.
딱 한 번 사연이 소개된 적도 있었다. 동경하는 DJ에게 나의 감정이 전달되는 것, 매체를 통해 나의 활자가 송출되는 것은 굉장히 짜릿한 경험이었다. 사춘기 시절 마음의 생채기도, 시험기간 심신의 고됨도 라디오가 주는 위로와 함께 극복했다. 그 따스함이 좋아서, 막연히 언젠가 한 번쯤은 DJ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이 대부분의 미디어를 대체하면서 물리적 매체로서의 라디오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 포맷은 팟캐스트로 계승됐지만 어쩐지 더 이상 그 맛이 살지는 않았다. 실시간성이 컸다. 기존의 라디오가 실시간성을 기준으로 다시 듣기를 옵션으로 제공한다면, 팟캐스트는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는 재현성을 기준으로 라이브를 옵션으로 제공했다. 소통의 감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라디오는 한동안 삶에서 잊혀 갔다.
그러던 중 클럽하우스를 시작했다. 하도 난리라기에 쭈뼛쭈뼛 문을 두드렸지만 잘 모르는 친구의 생일파티처럼 주변인이 되어 맴돌았다. 번쩍번쩍 손을 들고(‘손들기’ 기능을 통해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왠지 작아졌다. 체험을 끝내고 돌아서려던 어느 날, 좋아하는 작가님이 클럽하우스에 입성하셨다. 저서의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독자의 고민 상담까지, 다정한 대화들이 오갔다. 듣기만 하던 여러 날 끝에 마침내 손을 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쑥스러운 마음을 넘어서자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잊고 지냈던 위로와 온기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황홀했다. 그곳은 손을 들 수 있는 라디오, 평생에 한 번 꿈처럼 성사될까 하는 청취자 전화 연결이 수시로 벌어지는 라디오였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내가 디지털 콘텐츠를 판매하는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내세운 기치가 있었다.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소비하는 방식이다.’ IT와는 상극에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한 면접용 구호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사명감을 부여하고 싶었다. 영화를 안 보던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고, 책을 안 보던 사람이 전자책으로 책을 보기 시작하던 때였다. 내가 하는 일이 결국 디지털이라는 차가운 기술을 통해 사람들을 보다 따뜻하게, 감성적이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구호는 통했다.
그런 의미에서 클럽하우스의 열풍이 새삼 반갑다. 새로운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잊었던 혹은 몰랐던 대화의 위로를, 온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거기다 원한다면 누구든 언제든 DJ가 될 수 있는 라디오라니. 다음은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나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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