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칼럼]대학의 미래, 미래의 대학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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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피는 순서로 문 닫는다’
초유의 대학 정원 미달 사태
학령인구 감소 대학 경쟁력 악화
‘강소대학’ 발전만이 생존의 길
혁신적 대학교육 고민할 시기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금년 비수도권 대학들은 초유의 입학 정원 대규모 미달 사태를 겪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아예 치르지 않은 학생들도 합격시키고 장학금 추가 지원에 최신형 스마트폰까지 마련해 주며 신입생 유치에 힘을 다했지만, 지역의 대부분 대학들은 결국 정원을 못 채우고 새 학기를 시작했다. 벚꽃 피는 순서로, 즉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대학 문을 빨리 닫아야 할 것이라는 농담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제 몇 년이 더 지나면 수도권에도 벚꽃이 핀다는 사실을 대학들은 또 실감하게 될 것이다.

사실 학령인구 감소는 이미 오래전부터 모두가 익히 알고 있었던 일이다. 앞으로 학생 감소는 더 심각하고 이로 인한 어려움도 가중되겠지만 어느 누구도 본격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마주한 큰 사회 문제이니 당연히 일차적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다. 그러나 이 사태는 장기적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대단히 취약한 우리 대학들 스스로의 책임이기도 하다. 문제 해결을 미루다가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

등록금은 이미 13년째 동결되어 있는 상태다. 기업이라면 파산에 이르렀을 정도로 재정 상태가 어려운 사립대학이 허다하다. 이런 대학들에 집중해서 올해 전국적으로 1만 명이 훌쩍 넘는 신입생 결원이 생겼으니 마른 장작더미에 불꽃이 튀긴 셈이다. 단순한 시장논리로 학생이 찾지 않는 대학은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적절치 않다. 대학에 튄 불꽃을 방치하면 지역도 결국 불길에 휩싸일 수 있다. 규모에 상관없이 대학은 활기의 원천이다. 젊은이가 사라지면 지역은 생기를 잃는다.

학생 감소는 시작되었다. 3년 후에는 고등학교 졸업생 모두가 대학에 입학해도 현재 정원이라면 10만 명 이상 부족하다. 이제 대학들은 학생 충원에 문제가 없었던 과거는 완벽히 잊어야 한다. 스스로의 팔과 다리를 베어내는 구조조정의 아픔을 회피하는 대학들은 속절없이 주저앉고 말 것이다. 적은 수의 학생으로 특화된 분야에서 경쟁력을 지니는 소위 ‘강소대학’으로 발전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길이다. 아울러 대학들은 교육 및 연구 모든 측면에서 서로 개방하고 공유하면서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각자도생은 무모한 전략이다. 정부와 사회는 대학들의 이런 노력을 뒷받침해야 한다.

일본은 사립대학 비중이 우리와 아주 흡사한 나라다. 그리고 매년 약 100만 명에 이르는 고교 졸업생 중 절반 정도가 대학에 진학하므로 전체 대학생 수도 우리와 비슷한 규모다. 그러나 대학 숫자는 우리 두 배에 해당하는 750여 개이며, 그중의 30%는 재학생 전체가 1000명도 안 되는 작은 대학들이다. 이렇게 많은 수의 소규모 대학들이 건재한 것은 국가와 지방정부가 대학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지역에 작고 강한 대학을 키워야 한다.

기존 대학들이 스스로 혁신하는 일은 중차대한 이슈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교육은 200여 년 전 시작된 산업사회를 위한 시스템이기에,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혁신은 훨씬 더 근본적일 수 있다. 지금까지 대학의 주요 목표는 학생의 지적 능력 및 사회 적응력을 높여 산업사회 여러 직무에 종사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지금의 산업사회가 아닌 디지털 세상이다. 완연히 다를 것이다. 대학은 미래 디지털 사회에 필요한 인재상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교육의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

지난해 코로나19에 의해 전통적 대면교육이 차단되면서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멀리서 서성이던 미래가 성큼 다가온 셈이다. 7년 전 미국에서 개교한 ‘미네르바’는 강의실이나 도서관이 없는 대학이다. 학생들은 6개월씩 세계 7개 도시에 머물며 다양한 인류 사회를 직접 경험하고,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수강한다. “인쇄기도 없던 1000년 전 교육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현재의 대학은 21세기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 ‘미네르바’ 설립자의 이야기다. 150명 남짓의 신입생 모집에 세계 각국에서 2만 명이 넘게 지원하는 ‘미네르바’를 보면,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이 얼마나 새로운 대학을 갈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도 이런 혁신적 대학교육을 허용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대학#미래#대학 정원 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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