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서울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가 끝난 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패한 안철수가 이긴 오세훈을 화끈하게 도와줄까”에 맞춰졌다. 2012년 대선 때 안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퇴각한 뒤 개표 결과도 보지 않고 출국해 버린 장면이 또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정치권에선 안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 얘기가 매일같이 나온다. 단일 후보 결정 당일 안 후보의 기자회견장에 오 후보가 찾아가려 하자 거절한 것이나, 안 후보가 국민의힘과의 합당 조건을 이것저것 제시한 것도 회자됐다. 첫 합동유세장에선 다들 붉은색 계통의 점퍼를 입고 나와 원고 없이 연설을 하는데, 안 후보 혼자만 말끔한 양복을 입고 종이 한 장을 들고 읽어 ‘복장 불량’ ‘처삼촌 벌초 연설’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얘기들은 두 진영의 ‘화학적 결합’을 바라지 않는 여권 인사들의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합당 약속에 대한 안 후보의 미묘한 변화만큼은 고질적인 ‘간 보기 정치’로 보인다. 단일화 경쟁 막바지 안 후보는 ‘단일 후보가 되든, 안 되든 보선 후 국민의힘과의 합당’ 카드를 발표했다. “(2단계) 양당 합당의 기반 위에서 3단계로 범야권 대통합 추진”이라는 프로세스까지 꺼내 놨다. 반면, 단일화 후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야권 인재들, 시민단체들이 모여 범야권 대통합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2, 3단계를 버무린 새 조건을 제시한 듯한 느낌도 줬다.
안 후보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 중 합당이 전화위복이 될 것으로 보는 이도 많다. 이제 애매한 제3지대의 변두리에 머물지 않고, 정치의 메인 플랫폼에서 제대로 대선을 치러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그러나 뻔히 약속했던 합당 문제에서도 ‘간 보기 정치’가 반복되면 야권 전체의 대선 전망도 어두워진다.
게다가 야권에선 윤 전 총장에 대해서도 “정교한 정치 데뷔 플랜이 진행 중”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올라간 지가 1년이 넘었는데 ‘한다, 안 한다’ 의사표명 하나 없다”는 불만도 나온다. 주변에선 ‘4월 출마 선언설’ ‘제3지대 창당설’ 등 온갖 설들이 난무하는데, 정작 본인은 원하는 질문에만 답하는 ‘선택적 메시지 정치’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의 사례처럼, 언제부터인가 한국 보수정당엔 굳은 의지를 갖고 정치판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려는 지도자는 없어지고 명망가들의 ‘낙하산식 간 보기’만 난무하고 있다. 정치 자체를 만만하게 봤기 때문일 수도 있고, 1987년 민주화 이래 진퇴를 뚜렷이 하고, 혹독하고 오랜 테스트로 단련된 지도자만이 승리했던 점을 잊었을 수도 있다.
간 보지 않고 민정당과 합당한 김영삼이 투쟁 끝에 승리했고, 간 보지 않고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숙이고 들어간 노무현이 결국 대통령이 됐다. 국민들은 ‘간잡이’가 아니라 명쾌하고 명확한 지도자를 선택했다는 점을 야권 지도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면 야권의 내년 대선도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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