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124승을 거둔 ‘코리안 특급’ 박찬호(48)는 은퇴 후 골프에 푹 빠졌다. 인생의 전부였던 야구를 떠난 공허함을 채워준 것이 골프였다. 야구처럼 골프도 죽기 살기로 했다. 그는 “무식하게 하루에 드라이버를 1000개씩 때린 날도 있다. 다음 날 바로 몸살이 났다”고 했다. 주무기는 장타다. 어지간한 프로 선수보다 멀리 친다. 제대로 맞으면 300야드가 기본이다. 하지만 드라이버 샷이 왔다 갔다 하는 편이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그는 ‘늦깎이 프로’의 꿈을 꾼다. 지난주 그는 군산CC(파71)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스릭슨투어(2부 투어) 1, 2차 대회 예선전에 참가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했던가. 나름 분전했지만 필드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보다 잘 치는 아마추어 고수들은 차고 넘쳤다.
그는 또한 방송인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한번 입을 열면 잘 끝이 나지 않는 특유의 어법 탓에 ‘투 머치 토커(Too Much Talker)’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메이저리거 시절의 그를 보지 못한 젊은 팬들은 박찬호를 말 많고, 야구 잘했던 형님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한국 야구에 남긴 유산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가 선수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메이저리그에서는 더욱 그렇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특별 고문을 맡고 있는 박찬호 덕분에 많은 선후배가 새 기회를 얻고 있다.
공주고 선배였던 손차훈 전 SK 단장(51)은 박찬호와의 인연으로 2013년 샌디에이고에서 프런트 연수를 했다. 국가대표 포수였던 홍성흔(45)은 박찬호의 주선으로 2017년 샌디에이고 산하 마이너리그 인턴 코치가 됐다. 특유의 친화력과 노력 끝에 홍 코치는 이듬해부터 지난해까지는 샌디에이고 산하 루키리그에서 정식 코치로 활동했다.
그리고 올해는 젊은 내야수 김하성(26)이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었다. 샌디에이고는 5년 최대 3900만 달러를 투자해 김하성을 영입했는데 의사결정 과정에서 박찬호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김하성으로서도 언제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박찬호의 존재가 팀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하성의 넥센 시절 스승이었던 염경엽 전 SK 감독도 올해부터 샌디에이고의 연수 코치로 합류했다.
현재 샌디에이고 구단주는 피터 사이들러 씨다. 박찬호가 ‘양아버지’로 생각하는 피터 오맬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의 조카로 2012년 함께 샌디에이고를 매입했다. 박찬호는 2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있고, 사이들러 씨도 있다. 어떻게든 김하성을 도울 것”이라고 했다.
1994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박찬호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난 한국 음식을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는데 김치 등 한식을 먹을 때마다 미국 선수들로부터 ‘냄새 난다’며 나쁜 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박찬호가 있는 한 김하성이 클럽하우스에서 김치를 먹는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게 바로 박찬호가 남긴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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