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상응하는 대응’ 방침을 밝혔다. 언론 카메라에는 바이든이 미리 적어온 메모가 포착됐다. 최고령 대통령으로서 잦았던 말실수를 염려한 ‘커닝페이퍼’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보다는 참모진과 논의한 대응의 선을 정확하게 지키겠다는 의사 표시일 것이다.
바이든 외교안보팀은 대북정책 재검토와 관련해 “마지막 단계”라는 답변 외엔 말을 아끼고 있다. 행정부 곳곳에서 언론 플레이가 난무하고 대통령마저 불쑥불쑥 트윗을 날리던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는 전혀 다른, 조금은 답답할 만큼 모범생 같은 외교를 보여주고 있다. 바이든이 약속한 ‘모범의 힘’은 우선 단단한 내부 입단속과 한목소리로 나타나는 듯하다.
사실 바이든 외교팀은 모범생 일색이다. 대부분 아이비리그 출신 엘리트이자 쟁쟁한 이력을 지닌 베테랑들이다. ‘말은 부드럽게, 대신 큰 몽둥이를 들고(Speak softly, but carry a big stick)’라는 외교의 기본을 충실히 따른다. 바이든의 외교 중시는 30년 넘게 직업외교관으로 일한 윌리엄 번스 전 국무부 부장관을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발탁한 것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외교관 출신 CIA 국장은 처음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외교 성과로 꼽히는 이란핵합의(JCPOA)의 산파 역할을 했던 번스는 자신의 책 ‘막후교섭(The Back Channel)’에서 진정한 외교는 ‘조용한 힘(quiet power)’이라고 정의한다. “동맹을 돌보고, 상대를 압박하고, 분란을 잠재우고, 장기적 투자를 하는 눈에 띄지 않는(invisible)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의 대북 외교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래된 교범을 던져버리고 김정은과 직접 관여한 것은 옳았다. 한데 유감스럽게도 그의 충동과 무능, 독재자 관용, 쇼 집착은 진짜 외교를 밀어내버렸다. 그 사이 북한은 핵을 키우고 미사일을 정교화하고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면서 우리 동맹들을 갈라놨다.”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바이든표 대북정책은 이전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찍이 대북정책으로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 Engagement)’를 내걸었다. 하지만 “햄버거 협상부터 전투용 망치까지”라던 얘기대로 북한의 태도에 따른 즉흥적 대응이 전부였다. ‘분노와 화염’ 같은 거친 말폭탄으로 시작했지만 최대 압박은 실종됐고 ‘세기의 쇼’라던 정상 간 직거래의 환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기조는 유지될 수 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기에. 다만 트럼프 방식과는 달리 진짜 압박과 관여가 치밀한 매뉴얼 아래 진행될 것이다. 북한은 늘 그랬듯 협박과 도발로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그런 습관적 도발 행적을 돌아보면, 종국엔 스스로 걸어 나오게 될 협상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정작 괴로운 처지는 한국이다. 운전자를 자부해온 터에 동맹과 동족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보려 하지만 북한은 원색적 비난을 퍼붓고 있다. 김정은에게 한국은 미국으로 가는 징검다리였을 뿐, 그마저 용도 폐기한 것처럼 보인다. 한미는 ‘완전히 조율된 대북전략’에 기초한 공조를 약속했다. 한국의 자율적 외교 공간은 필요하다. 그러자면 동맹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서두르고 보채기만 하다간 조수석에조차 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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