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염을 막겠다며 국경을 봉쇄하고 무역을 중단한 지 1년이 넘었다. 다른 나라가 북한처럼 문을 닫아걸고 1년 넘게 ‘자가 격리’를 했다면 엄청난 혼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비교적 잠잠하다.
오히려 지난주 김정은은 평양에 5만 채의 주택을 5년 안에 짓겠다며 성대한 준공식까지 열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여명거리 규모(4800여 가구)의 거리를 매년 2개씩, 5년 동안 10개나 짓겠다는 방대한 목표다. 당장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일 것 같은데, 이런 배포를 보이는 것은 내부 경제난이 그리 심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최근 평양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외부의 추정보다 훨씬 상황이 안정적이다.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몰라도 현재까진 민생을 판단하는 여러 주요 지표가 코로나 봉쇄 이전보다 오히려 나아졌다.
우선 식량 사정이 더 좋아졌다. 지난 1년 동안 평양에는 배급이 정상적으로 공급됐다. 코로나 봉쇄 이전에는 배급이 들쑥날쑥해 시장에 의존해야 했지만, 평양을 봉쇄하고 시장을 통제하면서 그 대가로 당국은 배급제를 정상화시켰다. 그러다 보니 시장의 쌀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 평양의 현재 쌀 가격은 북한 돈 3000원대로 작년 이맘때보다 30%가량 싸졌다.
물론 식량을 제외한 수입 생필품과 식료품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올랐다. 가령 중국산 식용유는 코로나 봉쇄 직전 5L짜리 1통에 7달러였는데 작년 11월에 20달러로, 지금은 33달러까지 올랐다. 1년 새 5배 가까이로 오른 것이다. 설탕 같은 것은 구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지만 식량 가격만 안정적이면 통치하는 데 문제가 없다. 잘 길들여진 평양시민들은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김정은의 지시에 반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봉쇄에도 식량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걸핏하면 대북 식량 지원 카드를 꺼내들려 하는 한국 정치인들은 쌀을 주겠다고 하면 북한이 고마워할 것이라는 철 지난 생각에서 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식량과 더불어 전기 사정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고 한다. 요즘 평양은 전기를 하루 17시간 이상 무조건 보장하고 있다. 중국에 수출하던 석탄을 내수용 전기 생산에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작년엔 석탄이 있어도 화력발전소 발전기들이 수시로 고장 나 제대로 돌리지 못했는데, 중국에서 발전기 부품만큼은 우선적으로 들여온 것 같다.
전기 사정이 풀리니 교통 문제도 해결됐다. 요즘은 버스가 잘 다녀 과거처럼 정류장에 늘어선 긴 줄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버스 요금도 재작년만 해도 노선 거리와 버스 종류에 따라 북한 돈 1000∼3000원 사이에서 정해졌는데, 지금은 요금이 평양시내에선 무조건 1000원으로 고정됐다. 전기와 교통 문제만 해결돼도 평양 시민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아진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점은 코로나 봉쇄 기간 전자 지불 체계가 광범위하게 도입됐다는 것이다. 이젠 평양 사람들도 한국처럼 휴대전화로 상점, 식당, 택시 등에서 값을 다 치를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렇게 되니 현금을 슬쩍할 수 있어 여성들이 선호하던 수납원이나 남성들에게 선망받던 택시 운전사 직업의 인기가 떨어졌다. 평양에는 전문 운송회사도 생겼다. 과거처럼 개개인이 직접 물건을 나르지 않고도 휴대전화로 배달과 택배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긍정적 변화는 주로 평양에만 한정됐다. 지방은 코로나 봉쇄 이후 상황이 훨씬 나빠졌다. 그러나 북한에 ‘평양공화국’과 ‘지방공화국’이란 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말은 비단 지역 차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 김씨 일가가 수십 년 동안 평양에만 특혜를 몰아줬을까. 그 이유는 수도 시민들만 반역하지 않는다면 정권은 끄떡없고, 지방은 폭동이 수십 번 일어나도 진압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코로나 봉쇄 이후 평양의 특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평양 5만 가구 공사를 위해서도 평양과 상관없는 지방 사람들의 등껍질이 벗겨질 것이다.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울먹이며 “고맙습니다”를 17번 되풀이할 때, 광장에 선 평양시민들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코로나 봉쇄가 어쩌면 더욱 감격에 겨운 평양시민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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