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기자의 일편車심]디자인 기준을 바꾸는 전기차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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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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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가 첫 전용 전기차 ‘EV6’를 공개했다. 전용 전기차는 전기차만을 위해 설계한 기본 뼈대 위에 디자인한 차다. 내연기관차에서 엔진을 빼고 모터와 배터리를 넣는 방식으로 만들던 기존 전기차와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현대차도 최근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를 내놓았다. 두 전용 전기차에서 주목할 만한 공통분모는 세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 차 모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혹은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에 가까운 모습이다.

세단은 앞뒤로 길게 튀어나온 엔진룸과 짐칸, 낮은 차체가 특징이다. 반면 SUV와 CUV는 세단보다 차체가 높다. 짐칸이 승객 공간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차의 부피감을 키운다.

현대차의 쏘나타 같은 세단은 오랫동안 자가용 자동차를 대표해 왔다. 한국에서 특히 그랬다. 하지만 전기차는 이제 자동차 디자인의 기준을 바꾸려는 참이다. 두 종류의 전용 전기차를 공개한 독일 폭스바겐도 세단 대신 해치백과 SUV 디자인을 채택했다.

변화의 이유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건축계의 유명한 격언으로 수렴된다. 전기차에는 내연기관차의 핵심 부품인 엔진이 없다. 금속 실린더 안에서 연료를 폭발시켜 동력을 만드는 엔진은 크고 무겁다. 엔진 과열을 막고 원활한 작동을 돕는 냉각, 윤활 기능을 위해 필요한 부품도 많다. 이런 부품이 모두 사라진 전기차는 ‘엔진 없는 엔진룸’을 갖게 됐다. 이 엔진룸은 과거보다 훨씬 짧아도 된다. 그만큼 차의 실내 공간은 커질 수 있다.

옆에서 보는 차를 한번 떠올려 보자. 양옆으로 돌출된 엔진룸과 짐칸 때문에 챙 넓은 중절모를 닮은 세단의 디자인은 전기차와는 덜 어울린다. 엔진룸이 짧아지고 승객 공간은 커지는 차의 디자인이 반드시 SUV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납작한 세단 디자인은 아무래도 비례가 어색하다.

게다가 전기차에서는 대용량 배터리가 핵심 부품이 됐다. 부피가 큰 배터리는 차 바닥에 넓게 배치하는 것이 최선이다. 세단보다 차체가 높은 SUV나 CUV 같은 디자인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세단보다 SUV를 선호하는 세계적인 흐름도 이런 변화를 뒤에서 밀고 있다. SUV는 비슷한 길이의 세단에 비해 무겁다. 차체가 높으니 공기 저항이 크고 연료소비효율도 떨어진다. 그렇지만 실내 공간은 더 넓다. 사람들은 더 넓은 공간을 차에 요구하고 있다. SUV에 큰 짐을 싣고 여행에 나서던 사람들은 이제 뒷좌석이 짐칸과 이어지게 접어놓고 잠을 자는 차박까지 시도한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럽 사람들은 일찍부터 SUV나 해치백, 왜건처럼 짐칸을 키운 차를 선호해 왔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 납작한 세단은 도로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찾는 사람만 있다면 날렵하고 역동적인 세단도 함께 만들어질 수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르고, 기업은 고객의 요구를 따른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디자인#전기차#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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