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잎 야들야들한 촉감과 반들거리는 윤기는 봄의 길목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가운 손님. 이른 봄 노르스레 움튼 버들눈은 살랑살랑 바람결에 푸르름을 더해간다. 연푸른 잎이 완숙의 짙푸름으로 향하면서 천지는 생기와 생명력으로 넘실댄다. 버들은 이렇듯 경쾌하고 활기차고 몽글몽글한 느낌으로 다가서는 봄의 전령이다. 버들을 노래한 시인들이 하나같이 그 곱고 유연한 자태에 눈길을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가느다란 저 잎은 누가 마름질했을까. 가위인 듯 2월 봄바람이 그렇게 잘랐을 테지’라거나 ‘복사꽃 자두꽃 제아무리 예쁘대도 바람결에 하늘하늘 버들이 더 부드럽지’ 같은 시구가 태어났다. 한데 시인은 봄바람과 죽이 맞아 기세등등해진 버들이 영 마뜩지 않다. 버들이여, 봄바람 믿고 함부로 날치지 마라. 이리저리 버들솜 날리며 잠시 해와 달을 가릴지언정 그게 어디 영원하겠는가. 가을 찬 서리 내리면 시들어 떨어지고 마는 운명임을 안다면 경거망동 나댈 일은 아니지 않은가.
과거시험에서 답안지를 채점하던 구양수(歐陽脩)가 소동파의 것과 우열을 가리지 못해 헷갈려 했을 만큼 동파에 버금가는 문장력을 과시했던 증공. 버들의 여러 특징을 놔두고 굳이 버들솜의 폐해에 주목한 것은 권세를 뒷배로 유세 떠는 소인배를 용납하지 못하는 그의 도학자적 기질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