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에는 ‘연경랜드’가 있다고 한다. 김연경이 경기 도중 멋진 플레이를 한 동료 선수들을 번쩍 들어올리는 게 마치 놀이기구 같아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10년 만에 국내에 복귀한 김연경의 화끈한 세리머니는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이재영 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폭력으로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아 팀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선두를 독주하던 흥국생명은 쌍둥이 없이 치른 8경기에서 2승 6패를 기록해 2위로 밀렸다. IBK기업은행과의 플레이오프 전망도 어두웠다.
이 위기에서 김연경의 존재감은 빛을 발했다. 손가락 부상에도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까지 도맡았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후배를 위한 ‘놀이동산’도 재개장했다. 김연경에게 들려진 한 선수는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며 웃었다. 그런 왕언니가 있었기에 흥국생명은 악재에도 챔피언결정전에 오를 수 있었다. 김연경은 인터뷰 때 후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적응에 애를 먹으며 ‘불운아’로 불린 브루나에게는 오랜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보디랭귀지까지 쓰고 식사도 같이 하며 살뜰히 챙겼다.
“흥국생명 상황이 워낙 안 좋아 기업은행이 이길 거라고 봤다. 그 한계를 김연경이 깨더라. 실력뿐만 아니라 팀을 하나로 만드는 리더 역할이 대단했다. 아파도 티 한번 안 내고 후배들과 한번 이겨 보자며 파이팅을 보였다.” 흥국생명을 꺾고 우승한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이 기자에게 전한 찬사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은 없었어도 김연경의 투혼은 진한 감동을 전했다.
메이저리그 거물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뉴욕 메츠 입단을 추진하다 무산된 적이 있다. 당시 메츠 단장은 영입을 포기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야구는 25명이 함께하는 경기지 ‘24명 플러스 1명’이 하는 경기가 아니다.” 로드리게스는 전용기 서비스와 구장 내 별도로 자신의 캐릭터 상품 판매 코너를 요구하는 등 다른 선수들이 갖지 못한 특급 대우를 원했다. 팀 전체를 위해 예외를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 주말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 지 20년 만에 신생 SSG로 돌아온 추신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온통 쏠렸다. 이제 뚜껑은 열렸다. 명품시계 선물이나 낯선 맹견 마스코트 등이 화제가 되던 시기는 지났다. 신생팀에 대한 핑크빛 기대감이 넘치던 허니문 기간도 끝났다. 정글에 비유되는 야구장에서 어떤 경기력을 펼치느냐, 설사 지더라도 희망을 갖게 하느냐에 모든 이목이 집중된다.
SSG는 SK 시절인 지난해 9위에 처졌다. 처음 지휘봉을 잡은 초보 감독의 지도력은 시험대에 올랐다. 강팀들은 신생 팀이나 약체 팀 경기에 집중적으로 뛰어난 투수들을 내보내며 승리의 제물로 삼으려 한다. SSG 구단주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모습은 긍정적인 반응과 우려가 교차한다.
SSG의 팀명은 연고지 인천의 상징인 국제공항을 떠올리는 랜더스(Landers). SSG가 연착륙하려면 캡틴 추신수의 역할도 중요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본인이 비행기가 돼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육중한 항공기를 지탱하는 탄탄한 랜딩기어가 어울려 보인다.
비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이상 기류에 항공기가 흔들릴 때도 있다. 팀이 휘청거릴수록 리더의 헌신과 희생은 절실해진다. 아름다운 패자로 칭송받은 김연경은 새로운 챔피언 GS칼텍스의 슬로건을 통해 새삼 깨달음을 얻었을지 모른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스포츠뿐 아니라 어디서나 적용되는 평범한 진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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