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지난해 임대차2법(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요구권) 시행 이틀 전 자기 아파트 전세금을 대폭 올려 경질됐다. ‘부동산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책임이 작지 않다. 이해 못 할 점은 김 전 실장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공정거래위원장 재직 당시 김상조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때 다른 부처 자료까지 읽고 의견을 냈다. 2018년 하반기, 그는 타 부처의 자금세탁방지법 관련 자료에 별첨으로 붙어 있던 ‘독립 몰수 검토’라는 한 줄을 찾아냈다. 독립 몰수는 범죄 혐의자 기소 없이도 재산만 따로 몰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자칭 ‘재벌 저격수’인 김상조는 대기업 임원의 부당 이득을 토해내게 할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몰수 방안을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문 대통령도 법무부 장관에게 적극 검토를 지시했다.
꼼꼼함이 몸에 밴 사람도 막상 자기 일에는 관대해지기 쉽다. 이 관대함을 재료로 몸집을 키우는 ‘내로남불’은 남 탓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김상조는 “현재 사는 전셋집 주인의 요구로 보증금을 2억 원 넘게 올려줘야 했다”고 해명했다. 보증금을 집주인이 올렸으니 자신도 올리는 게 시장 원리에 어울린다는 자기 합리화의 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잘못의 원인은 내가 아닌 남이라는 타자(他者)지향성,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내면지향성의 상실이 진보 진영에 퍼져 있다. 김상조는 진보 인사들이 습관처럼 내뱉는 ‘성찰하겠다’는 다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보여줬다.
내로남불도 이해하려 들면 전혀 못 할 일도 아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는데 전세 끼고 사둔 내 집의 보증금으로 돌려 막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현금 14억 원이 있지 않았냐고 하는데 좀 억지스럽다. 업무상 비밀을 이용한 게 아니라면 보증금 인상만으로 김상조를 더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김상조의 진짜 실책은 부동산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든 점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국가 주도로 세금을 올려 매물을 늘리는 방식이다. 부동산 증세를 하면 세금이 집값에 전가된다는 건 재정학에도 나온다. 보유세 수준을 높이면 버티지 못한 집주인이 집을 팔 것이라는 생각에 종합부동산세를 올렸지만 나오라는 매물은 나오지 않고 ‘영끌’ 매수만 늘었다. 세금이 전가된 집이 일부 매매되면서 집값은 더 올랐고 여기에 세금이 붙어 시세가 또 올랐다. 정책실장 재임 9개월 동안 7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놓으면서 이 악순환을 되돌릴 기회가 많았지만 그가 한 일이라고는 “불편하더라도 좀 더 기다려 달라”는 애원뿐이었다.
고(故) 김기원 전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김상조가 존경하는 ‘개혁적 진보주의자’다. 김 교수는 보수가 시장에 너무 의존하면 ‘정글자본주의’가 되지만 진보도 극단으로 흐르면 국가가 경제활동을 주관하는 사회주의가 된다고 경고했다. 진보와 보수의 논리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조언이지만 김상조는 공공 주도의 부동산정책, 국가 주도의 ‘독립 몰수’에 꽂혀 있었다.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전임자로부터 “빨간 주머니, 파란 주머니를 받았다”고 했고 김상조 전 실장은 “호주머니에 대책이 많다”고 했다. 그 주머니에서 나온 25개의 대책 때문에 온 국민이 피해를 봤다. 진보 정권은 금방 표시가 나진 않지만 결국 전체 경제를 망가뜨릴 대실패에는 말뿐인 사과만 하다가 표심에 직접 영향을 주는 내로남불에는 즉각 반응했다. 국민을 동물에 비유한 지난 정부의 한 관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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