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년간 장기연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사정상 한국의 살림을 가지고 갈 수 없어서 미국에는 거의 빈손으로 갔고,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살림을 크게 늘리지 않았다. 어차피 한국에 돌아갈 때 다 버리고 가야 할 테니 거추장스럽게 짐을 늘릴 이유가 없었다. 그 당시 나의 쇼핑 기준은 1년 뒤 한국으로 부칠 수 있는 것인지 여부였다. 버릴 때를 생각하니 살 때의 기준도 달라졌다. 정말 꼭 필요한 물건만 샀고, 쇼핑을 아예 잘 하지 않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미니멀 라이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1년 뒤 귀국을 준비하며 짐을 싸는데 옷장 한구석에서 풀지 않은 박스 하나가 나왔다. 나는 그 박스를 열어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는 내가 미국에 오기 전 이곳 생활에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서 보냈던 물건들이 처음 담았던 그대로 있었다. 비싼 운송료를 내고 미국으로 부쳤던 것인데 막상 그런 물건들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1년을 보낸 것이다. 그것들 없이도 불편함 없이 잘 살았다. 그런데 막상 다시 보자 그 물건들이 꼭 필요한 것만 같았고, 다시 비싼 운송료를 내고 한국으로 보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버리고 돌아오긴 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박스 속 물건들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생각해보면 소유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뭔가를 가지면 행복할 거라고 믿는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갖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갖고 싶던 걸 손에 넣어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면 다시 또 새로운 뭔가를 찾아 헤매고, 그걸 얻지만 그 기쁨은 휘발되고, 다시 새로운 걸 찾고…. 이 악순환에 들어서면 삶은 쓰지도 않을 것들로 잠식된다. ‘필요’와 ‘욕망’을 구분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미국에서의 미니멀 라이프는 사라져버렸다. ‘끝’이라는 기한이 사라지자 나는 내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했다. 언젠가 다시 쓸 것 같아서, 비싸게 산 것이어서, 물건과 함께한 추억 때문에 등 갖가지 이유로 버리지 못한 것들이 쌓여갔고, 그건 어느 순간 내 생활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심지어 물건에 대한 집착과 미련은 과거에 대한, 사람에 대한, 욕망에 대한 집착과 미련으로 이어졌다.
요즘 다시 미국에서의 1년을 돌아본다. 남들 보기에는 없이 살았던 생활이었으나 마음만큼은 편안했고 군더더기 없는 날들이었다. 소유욕 혹은 소유물에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진정 원하는 바를 추구했던 삶이었다. 많은 것들로 번잡해진 지금, 그 같은 삶의 방식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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