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윤종]백신 개발 실패한 ‘퀴리 부인’의 나라 프랑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2일 03시 00분


젊은 두뇌 유학 오던 면역학의 원조
적당주의와 지원 축소로 인재 유출

김윤종 파리 특파원
김윤종 파리 특파원
7일 오후 프랑스 파리 외곽 센생드니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 프랑스 최대 축구경기장으로 프랑스 국가대표팀이 1998년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경기장 입구에 130m가량 이어진 대기 줄이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가 최근 8만 명에 달하자 이곳은 6일부터 대규모 백신접종센터로 변신했다.

현장 취재에 나선 이날 유럽의약품청(EMA)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혈전 부작용 간 연관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접종 대기자들에게 백신 부작용이 걱정되지 않는지 물었다. 의외로 “그런 백신이라도 개발한 게 어디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면역학 강국’ 프랑스가 백신 개발에 실패했다는 상처가 예상보다 큰 것 같았다.

탄저병, 광견병 백신을 개발한 ‘면역학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가 1888년 설립한 파스퇴르연구소는 코로나 백신 후보물질 개발에 실패했다. 글로벌 빅5 제약사인 프랑스 사노피도 백신 개발에 진척이 없자 경쟁사인 화이자 백신을 위탁 생산하기로 했다. 혈전 우려가 커질수록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중 우리만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한탄도 커졌다.

이런 논란 속에서 요즘 프랑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름은 노벨상 2관왕에 빛나는 ‘퀴리 부인’이다. 1867년 폴란드 출생의 마리아 살로메아 스크워도프스카는 1891년 파리 소르본대 진학으로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연구를 거듭해 프랑스식 이름이자 우리가 아는 ‘마리 퀴리’가 됐다.

현재는 정반대다. ‘유전자 가위’ 개발로 지난해 10월 노벨화학상을 받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는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소르본대를 다녔다. 1996년까지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일했다. 프랑스에서의 삶은 이게 끝이다. 이후 그는 25년간 미국, 스웨덴, 독일로 옮겨 다니며 연구를 지속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는 충분히 지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에스테르 뒤플로 역시 파리 태생으로 석사 졸업 후 미국으로 이주해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성취를 이뤘다. 백신 개발에 성공한 미국 제약사 모더나의 스테판 방셀 최고경영자(CEO)도 프랑스인이다. 프랑스는 더 이상 생명공학 분야의 선두주자가 아니며 연구자들에게 ‘관심 밖’ 국가로 전락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다.

프랑스 정부의 보건의료 연구지원금은 2011년 35억 유로에서 2018년 25억 유로로 29%나 감소했다. 프랑스 연구원의 초임 연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언론에서 “어린 마리 퀴리가 프랑스를 선택하던 시대는 지났다. 현실을 깨닫고 바꿔야 한다”는 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은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파리 15구에 사는 프랑스 지인은 최근 길거리에서 환호를 질렀다. 사노피 연구원인 그는 스위스 제약사 ‘로슈’로 이직을 시도했고 이날 확정 전화를 받았다. 그는 “퇴보되는 것 같아 걱정됐다”며 “적당히 일하는 관료주의 풍토에, 성과에 대한 보상도 적다 보니 연구원들이 칼퇴근, 바캉스부터 챙긴다”고 말했다. 이어 “스트레스 받더라도 경쟁이 필수”라는 그를 보면서 잠시 프랑스의 미래가 걱정됐다. 그와 헤어진 후에는 ‘매년 수천 명의 두뇌급 인재들이 한국을 떠난다’는 각종 조사 결과가 저녁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백신#개발#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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