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 논란’ 되풀이하지 않으려면[기고/김세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2일 03시 00분


김세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김세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이유 중 하나로 ‘비난 본능’을 지적했다. 비난 본능은 뭔가 잘못되면 나쁜 사람이 나쁜 의도로 그러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단순한 해법에 갇혀 문제 해결 같은 정작 중요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투표 참여 권유 현수막에 특정 표현 사용을 제한한 것을 두고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지적이 있었다. 온라인의 자유로운 정치적 표현에 익숙한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다만 이를 의도에 따른 결정으로 여기고 선거관리의 공정성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을 요원하게 한다.

문제의 원인은 공직선거법의 규제가 개선되지 못한 채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은 선거부정 방지에 무게를 두고 제정되었고, 당시 주요 선거운동 매체인 현수막 등을 이용한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행위를 금지했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이는 27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정당이나 후보자의 ‘선거운동’ 현수막에는 표현의 제한이 거의 없는 반면, 판례 등에 따라 위 ‘유추’의 범위가 넓게 인정되는 까닭에 시민단체 등의 투표 참여 권유 현수막의 경우 광범위한 표현의 제한이 발생한다. 온라인은 물론 말로 하는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도 사라진 현 상황에서 현수막 등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선거와 관련한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을 막는 걸림돌로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직선거법 개정 없이는 이러한 상황이 선거마다 반복될 것이며, 이로 인한 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한 불신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미 2013년, 2016년 등 여러 차례 선거법 개정 의견을 제출한 바 있으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유권자가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정책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경쟁하는 선거야말로 선거관리위원회가 추구하는 목표이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하여 ‘자유’와 ‘공정’의 상충(Trade-off)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그 기준에 유권자의 법 감정을 반영하고자 한다. 사회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유권자의 의식수준과 눈높이에 맞추어 법 개정 의견을 제출하고, 선거관리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일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논란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공정한 선거관리에 대한 국민적 열망의 소산임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문제의 원인이 되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개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부디 현재 논란이 공직선거법 개정이라는 실질적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김세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현수막#논란#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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