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여름 ‘영끌’로 서울 강서구에 18평짜리 구축 아파트를 구매한 K(30)는 지난해 총선 때와 달리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뽑지 않았다. 소위 ‘벼락거지’ 신세도 면했건만 무엇이 그를 돌아서게 했을까. “작년에 집 살 때 대출이 다 막혀서 자금 마련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투기 방지책이라는 여당 말을 믿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선거에서 불리해지니 부랴부랴 대출 규제를 완화한다는 원칙 없는 구태 정치에 실망했다.”
# 스스로 ‘공부는 잘해서 다행히 대기업에 입사한 흙수저’라고 소개한 L(38·여)은 “차라리 착한 척은 안 하는 국민의힘이 낫다”고 했다. ‘조국 사태’ 때도 “아무리 그래도 민주당이 낫겠지”라며 지지했지만 총선 직후로도 윤미향 추미애부터 노영민 김조원 김상조 변창흠 박주민까지 1년 내내 여권발(發) 위선이 줄을 이었다. 그럴 때마다 민주당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진영 논리를 내세웠다. L은 “‘우리 편이 아니면 적폐’라고 주장하며 진보를 참칭하는 좌파들에게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 “민주당이 여당이 되자마자 태세 전환하는 모습에 오만정이 떨어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대학생이었던 P(29·여)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서슬 퍼런 집권여당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를 배웠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신들이 비판하던 보수당보다 오히려 더 퇴보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청년, 여성, 이주민,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방식은 보수당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며 “권력을 잡자마자 오만하게 군림하긴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1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20, 30대 유권자들이 “이번 4·7 재·보궐선거에서는 더 이상 민주당을 차마 뽑을 수 없었다”고 말한 이유다.
민주당엔 충격의 참패로 기록될 4·7 재·보궐선거 결과는 10년 전 치러진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 10년 전 주요 언론들은 당시 여당(한나라당)의 패배 이유로 일제히 20∼40대 유권자의 성난 민심을 꼽았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20∼40대의 실망과 분노가 ‘표심의 반란’으로 분출됐다”(동아일보 2011년 10월 27일자) “4년 전 ‘경제’ 지지한 젊은 층…‘그들만의 경제’에 분노, 反한나라로”(조선일보 2011년 10월 27일자)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선거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 벽이 민심 속에 자리 잡은 ‘불통’ 국정을 향한 심판론이었다”(경향신문 2011년 10월 27일자) “MB 찍었는데 좋아진 게 없었다, 여당에 배신감”(한겨레 2011년 10월 28일자) 등 당시 기사 속엔 야당에 몰표를 보냈던 유권자들의 분노와 불안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0년 전 유권자들이 경제 양극화와 주거 불안, 그리고 그를 외면했던 한나라당의 기득권적 사고에 등 돌렸듯 이번에도 민주당의 불공정과 내로남불, 그리고 그를 도리어 정당화하려 드는 도덕적 우월감에 대한 심판이 이뤄진 것이다. 유권자들은 과거를 잊은 정치에 결코 미래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4연패의 늪에서 빠져나온 국민의힘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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