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지도부가 초래한 파국[임용한의 전쟁사]〈157〉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3일 03시 00분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중동전쟁은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자 주변 5개 아랍 국가가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은 1947년 11월 유엔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리독립안이 통과되자마자 양측 대결은 전쟁 수준으로 번졌다. 처음에는 카페에서 총을 난사하고, 상점에 폭탄을 터뜨리는 형태였지만 이내 영토 확장책으로 발전했다. 서로 유리한 지역을 확보하려고 했고, 조직적으로 병력을 동원했다.

독립 전에는 영국이 위임통치를 맡고 있었지만, 양측의 무력충돌에 속수무책이었다. 예루살렘, 갈릴리 등 접경지역과 전략요충지에서 특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중 하나가 하이파다. 하이파는 북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제일 크고 발전된 도시였다. 1948년 4월 하이파는 아랍인 거주구역과 유대인 거주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중간에 영국군 수비대가 주둔했다. 양측 민병대의 공격을 견디다 못한 영국군은 19일 밤 몰래 항구지역으로 이동했다. 아침이 되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병대는 완충지대가 텅 비어버린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서로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총격이 시작되었고, 이내 시가전으로 번졌다. 이틀간 전투 끝에 하이파는 이스라엘 것이 되었다. 결정적인 요인은 팔레스타인 군 지도부의 무능과 주민들의 공포심이었다. 팔레스타인 지도자의 증오는 대단했지만 전투 현장에는 없었다. 민간인들은 공포에 떨었고, 이 약점을 간파한 이스라엘이 시가지로 박격포를 발사하자 공황이 일었다. 휴전이 성립되었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남아서 싸우기보다 안전한 도시로 이주하기를 원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축출 정책은 악명이 높다. 이스라엘의 잘못도 있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왜 자신들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이스라엘에 그런 꼴을 당해야 했는지도 분석해야 한다. 분열,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 리더십 결여, 고난을 마주하려는 투지 부족이 원인이었다.

임용한 역사학자
#지도부#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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