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엉망인 날이었다. 한 달 넘게 공들여 준비한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크고 작은 이슈들이 더해지자 스스로의 선택들에 대한 불신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만원버스를 잡아탄 퇴근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류장까지 잘못 내렸다. 걷기에는 멀고 택시를 잡기에는 가까웠고, 다시 버스에 몸을 구겨 넣을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설움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 길 건너로 순두부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당장 집에 가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내일 울더라도 지금 행복해지고 싶었다.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듯 선언했다. ‘방학!’ 결연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여기 순두부 하나랑 소주 하나 주세요!” 실수 아닌 척, 의도한 시간인 척. 버스까지 잘못 내린 서러운 하루는 순식간에 맛있는 반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기특한 하루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위로를 동력 삼아 다음 날도 나는 울지 않았다.
‘마음 방학’이라는 자체 제도를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마음에 방학을 주는 것인데, 어느 날 문득 마음에 빨간불이 들어올 때 ‘작전타임’을 외치듯 스스로 부여한다. 원칙은 간단하다.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최대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염려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잠시 내려놓는다. 내일의 나에게 후일을 맡기고 오로지 ‘지금 나의 기분’만을 생각하는 철없는 이기주의자가 되어 보는 것.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먹고 싶은지,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묻는다.
어떤 마음 방학에는 무례한 약속을 취소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또 어떤 마음 방학에는 휴가를 내고 경주로 떠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음 방학은, 느지막이 일어나 먹고 싶은 메뉴로 밥을 지어 먹고, 읽고 싶었던 책을 보다가 달리기를 하고 돌아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해야 하는 일’의 부채감에 미뤄 놓았던 ‘하고 싶은 일’들에 기꺼이 일상의 자리를 내어준다. 지극히 사소하지만 나를 웃게 하는 것들.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우는 시간은 시든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삶에의 애정을 환기시키고 삶과 나를 화해시킨다.
마음 방학은 생의 주인공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일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기대와 의무를 의식적으로 거두어 내고 작은 판단부터 온전히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내려봄으로써, 생활의 부침에 이리저리 틀어진 행복의 기준점을 다시 나로 맞추는 일이다. 이 간헐적이고 사소한 이기적 선택들이 모여 삶의 행로를 조금 더 ‘나의 행복’을 위하는 방향으로 조율해 나갈 것을 믿는다.
이와 비슷한 자신만의 제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몇 알고 있다. 혹자는 ‘평화의 날’, 혹자는 ‘파업’이라 부를 뿐 그 취지는 같다. 일상에 있어 변칙을 허용하는 일종의 ‘치팅 데이’(다이어트 중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는 날)인 셈이다. 그러니 오늘, 유난히 엉망인 하루라면 마음에 방학을 부여해보자. 터널 안에서는 터널을 볼 수 없다. 한 발자국 벗어나 관망하는 시간 속에서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사실은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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