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1867∼1916)라고 하면 20세기 초반 근대문학의 태동기에 근대적인 인간을 문학적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소설가로 평가받지만, 이 글에서는 조금 사소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바로 눈앞에 있는 문을 열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 관해서 말이다. ‘산시로’ ‘그 후’ ‘문’으로 묶이는 소세키의 ‘전기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1910년에 발표된 ‘문’(송태욱 옮김·현암사)에 등장하는 소스케라는 인물이다.
도쿄의 관청에서 근무하는 소스케는 아내 오요네와 함께 아이 없이 살면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일상을 꾸리고 있다. 잔잔한 물결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두 사람의 일상은 그 무엇에도 적극적이지 않고 어떠한 욕구도 회피해버리고 마는 소스케의 내면에서 비롯한다. 유산과 남동생의 학비 때문에 숙부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소스케는 일처리를 한없이 미루기만 한다. 물려받은 병풍을 고물상에게 한참 밑지고 팔아도, 남동생이 자신을 무시하는 듯 불만을 내비쳐도, 소스케는 자기에게 주어진 마땅한 인생이라는 듯 가만히 곱씹을 뿐 어떤 형태로도 괴롭거나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부에서야 비로소 밝혀지는 “과거로부터 질질 끌고 온 운명” 때문에 어둡고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끝없이 연기되며, 매듭지어지는 사건은 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장인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너라”라는 목소리 앞에서 소스케는 무력하게 무릎을 꿇은 채로 끝나는지도 모른다. 참선하기 위해 들어간 가마쿠라의 절에서도 그는 답을 구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카프카의 ‘성’(1926년)에서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수화기에서 “언제라도 절대 들어올 수 없어”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던 이방인 K처럼 말이다. 소스케가 도저히 열고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문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어쩌면 답은 문을 열고 너머로 건너가야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두드리다가 포기하고 돌아섰을 때 자신이 매일 살아가던 일상의 문턱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정도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내 오요네와의 폐쇄적인 생활은 몹시 비극적인 색채가 짙으면서도 희미한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다. 비극과 권태와 사랑이 뒤섞인 두 사람의 세계는 “두 사람의 정신을 구성하는 신경계는 최후의 섬유에 이르기까지 서로 껴안고 있었다”고 표현된다. “길은 가까운 데 있는데 왜 먼 데서 구하느냐(道在爾而求諸遠)”는 맹자 이루장의 철학적 구절을 문학적 장면으로 옮기면,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진 두 사람의 고요하고 단조로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무심하게 반복되는 이 일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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