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올든버그의 아이스크림[움직이는 미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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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사틀 로그 아트히스토리
사진 출처 사틀 로그 아트히스토리


송화선 신동아 기자
송화선 신동아 기자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년)의 주인공 ‘무니’는 세상 두려울 게 없는 여섯 살배기 꼬마다. 디즈니랜드 근처 ‘매직 캐슬’ 모텔에서 엄마와 단둘이 사는 그의 일상은 자유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누가 더 멀리까지 침을 뱉을 수 있나 경쟁하고, 야외 수영장에 죽은 물고기를 던져 넣어 이웃을 깜짝 놀라게 한다. 마을 빈집에 불을 질러 소동을 일으키고, 아이스크림 사 먹을 돈을 벌겠다며 낯선 어른들에게 가벼운 사기도 친다.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제가 천식이라 당장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대요. 거스름돈 남는 게 있으면 저한테 주세요!”

이 영화에서 무니가 그렇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아이스크림콘을 하나 사서 친구들과 한입씩 나눠 먹는 장면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행복함으로 반짝이는 무니 눈빛이 한없이 아름다워서다.

사실 무니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매직 캐슬’ 모텔은 오갈 데 없는 빈민의 집단 거주지이고, 무니네 환경은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하다. 클럽 댄서로 일하다 쫓겨난 무니 엄마는 방세를 마련하려고 향수 행상부터 도둑질까지,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한다. 그러고 보면 무니가 먹는 아이스크림은 언제 녹아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무니의 위태로운 행복을 상징하는 은유 같기도 하다. 독일 쾰른의 한 쇼핑몰 옥상에 거꾸로 처박힌 채 녹아가는 거대한 아이스크림콘처럼 말이다.

세계적 팝 아티스트 클라스 올든버그(1929∼)와 아내 코셰 판 브뤼헌(1942∼2009) 부부가 함께 창작한 ‘떨어진 아이스크림콘(Dropped Cone)’은 높이 12.1m, 직경 5.8m의 대형 공공 설치물이다. 작가들은 오래된 성당 첨탑이 즐비한 쾰른 시내 현대식 건물 위에 아이스크림콘으로 또 하나의 첨탑을 세움으로써 현대인의 신앙은 ‘소비’임을, 쇼핑몰이야말로 이 시대의 ‘성전’임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듯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는 바로 그 시대를, 오직 가난한 엄마 한 명에게 의지한 채 살아내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일견 웅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올든버그의 아이스크림콘이 실상은 머잖아 지상으로 추락할 운명이라는 점이다. 한때 봉긋하게 솟아 있었을 아이스크림은 바닥에서부터 조금씩 녹아내리는 참이다. 쇼핑몰 창문에 흘러내린 얼룩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바니타스’ 정물화를 연상케 한다.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허무를 뜻한다. 당대 화가들은 정물화에 해골이나 유리잔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결국 죽고 부서질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운명을 표현하곤 했다. 어쩌면 아이스크림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부, 명예, 행복의 덧없음을 선명히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현대적인 소재가 아닐까 싶다.

올든버그는 1970년대부터 공공미술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다. 미국 필라델피아 시청사 앞에 선 거대한 ‘빨래집게’(1976년)를 제작했고, 서울 동아미디어센터 앞에 위치한 청계천의 명물 ‘스프링’(2006년)도 그와 브뤼헌의 작품이다.

송화선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움직이는 미술#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올든버그의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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