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미국의 전설적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73)은 2017년 “내가 50년 전에 했던 짓을 지금 하는 건 4000배나 쉽다. 기술이 범죄를 낳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기술을 이용해 벌어지는 사기 범죄 중 대표적인 게 피싱(phishing)이다. 범인들은 전화, 메일, 메신저 등을 이용해 사람을 속이고 쉽게 돈을 뜯어가지만 피해자들은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지난해 1월 20일 ‘김민수 검사’와 통화 중 자신이 전화를 끊는 바람에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게 됐다고 믿은 취업준비생 김모 씨(28). 가짜 검사의 요구대로 420만 원을 준 뒤에도 괴로워하던 김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검사라고 믿었던 사람은 98명으로 이뤄진 보이스피싱 범죄단의 말단급 조직원이었고, 결국 구속됐다.
▷피싱 범죄의 주요 타깃은 세태에 따라 달라진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65%는 40, 50대였다. 코로나19로 수입이 쪼그라든 가장들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다. 청년층도 보이스피싱의 표적이 된다. ‘사칭형’ 범죄 피해자 중 10%가 20, 30대였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이 ‘현금을 받아서 입금만 해주면 수당을 준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말에 속아 범죄에 연루돼 처벌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범죄 수법도 시대상을 반영해 진화한다. 대표적 사례로 전화 대신 SNS 메신저로 가족·지인 등을 사칭해 돈을 요구하는 ‘메신저 피싱’이 늘어나는 추세다. 메신저 사용이 보편화된 데다, 메신저는 텍스트로만 대화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속이기가 더 쉽다. 2018년 216억 원이었던 메신저 피싱 피해액이 지난해에는 373억 원으로 2년 만에 70% 이상 늘었다.
▷보이스피싱범들에게는 코로나19 사태 역시 새로운 기회다. 정부가 제공하는 저금리 대출을 받으려면 기존에 갖고 있는 고금리 상품 대출금을 먼저 갚아야 한다고 속인 뒤 돈을 받아서 챙기는 식이다. 백신과 치료제도 범죄의 소재다. 미 연방통신위원회는 지난달 ‘가짜 코로나 백신, 치료제 등을 판다는 전화가 늘고 있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금감원은 ‘경찰·금감원이라며 금전을 요구하면 무조건 거절’, ‘메신저·문자를 통해 금전을 요구하면 유선 확인 전까지 무조건 거절’ 등 보이스피싱 예방 5계명을 제시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보이스피싱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3만1681건의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했고, 피해액은 7000억 원에 달한다. 하루 평균 19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가짜 김민수 검사가 사라지게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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