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대책 회의의 하이라이트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반도체 웨이퍼를 집어 들고 “이게 바로 인프라”라고 선언한 장면이었다.
인프라(인프라스트럭처)는 말 그대로 기반을 말한다. 교통 인프라가 물류와 여행 산업, 국민 이동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듯이 인프라를 챙기는 일은 성장과 안보를 위한 기본적 포석이다. 웨이퍼를 집어 든 바이든 대통령 머릿속에는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 아니라 반도체가 차질 없이 공급되는 기반 위에 꽃필 미국 제조업 경쟁력과 일자리가 떠올랐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프라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 ‘말편자의 못’이라는 비유를 들며 반도체 외에 배터리와 희토류, 의약품을 꼽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소송이 미국 전기차 제조업과 조지아 공장 일자리를 위협하자 팔을 걷고 나섰다. 배터리(말편자)가 없어 전기차(말) 공장을 세워선 안 된다는 것이다.
10여 개 관련 부처 및 기관 관료들이 두 회사에 달라붙었다.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두 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설득해 최종 합의를 이끌어냈다. 협상에 관여한 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한 기관에 수십 년 근무하면서 얻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압박하는 실력이 대단했다. 바이든 정부 관료들이 상당한 행정 경험과 경쟁력을 가지고,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뚜렷한 목표 아래 치밀하게 협업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행정 관료들이 생각하는 인프라와 ‘말편자의 못’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산업생산 13.6%, 고용 11.4%를 차지하는 자동차 공장들이 반도체가 없어서 멈춰서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미국, 중국, 유럽연합은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데 국내에선 정부 차원 육성은 미미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같은 대기업을 콕 집어 밀어주는 일을 주저했기 때문이다.
차세대 먹을거리인 전기차 배터리에선 리튬, 코발트 등이 ‘말편자의 못’이다. 하지만 해외 자원 확보는 민간 기업 손에만 맡겨 놓은 모양새다. 관가에서 자원외교는 금기어가 되다시피 했다. 제조업 인프라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중요한데, 급격한 에너지 전환 정책은 기업들을 불안하게 한다.
대한민국을 ‘IT 강국’이라고 부르지만, IT기업의 ‘말편자의 못’인 개발자 부족 사태에 기업들은 피가 마르고 있다. 그런데도 필요 인력을 양성할 대학 학과 정원을 늘리는 일은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기존 규제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을 기르는 일은 결국 민간 기업의 손에 떨어졌다.
국가 경쟁력,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는 대범한 인프라 계획이 보이지 않고, 말편자의 못을 챙기는 일이 정교하게 추진되지 않으니 ‘특단의 대책’이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인용한 문구 전체 내용은 이렇다. ‘못 하나가 없어서 말편자를 잃었네. 말편자가 없어서 말을 잃었네. 말이 없어서 기사를 못 보냈네. 기사를 못 보내서 전투에 패했네. 전투에 패해서 왕국을 잃었네. 못 하나가 없어서 전부 다 잃었네.’
대한민국이 말편자의 못을 잃지 않으려면 기존의 논리에만 머무르지 말고 국가 경쟁력과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데 과감히 집중해야 한다. 왕국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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