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언제 즐거움을 느끼나?”
근본적인 질문으로 혁신해 기사회생한 레고
빛나는 성과는 절체절명의 위기 넘긴 선물
與野, 왜 선택받아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덴마크에 레드 어소시에이츠(ReD Associates)라는 컨설팅 회사가 있다.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해결책을 찾아내는 곳이다. 이 회사의 솔루션 덕분에 기사회생한 유명한 사례 중의 하나가 레고다. 레고는 1932년에 창업한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장난감 회사 중 한 곳이지만 1990년대에 비디오 게임이 유행하자 시름시름했다.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여러 컨설팅 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다 찾은 곳이 레드 어소시에이츠였다. 그들의 질문은 사뭇 달랐다. ‘어떻게 매출을 올릴까’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이며 아이들은 언제 즐거움을 느끼나’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갈 길이 급한 기업에 이런 질문은 한가하게 비칠 수 있겠으나 결국 이들이 길을 찾아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심층적으로 관찰한 결과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는데, 아이들은 즉각적인 재미도 좋아하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어려운 것을 익히고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낼 때도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거였다.
이런 인사이트를 받아들인 레고는 더 어려운 제품을 만든다. 조립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다 만들고 나면 더 근사한 모양이 되도록 레고 블록 개수가 1000개가 넘는 제품을 개발한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 레고는 부활했다. 레드 어소시에이츠가 돋보이는 것은 물론 그들의 성과 때문이지만 그들이 관심을 두는 질문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 역시 클라이언트의 매출 회복 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임무지만 출발은 전혀 비즈니스 질문이 아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는 것, 왜 그러느냐는, 근본을 묻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길을 찾아낸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어째서 그런지 오래도록 이유가 궁금했는데 얼마 전 어느 기업의 임원과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은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상황에 따라 사람의 대응 능력이 달라지는데 위기가 되면 평소의 200% 능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데드라인이 있으면 어쨌든 끝내게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는 얘기였다. 내 생각은 이랬다. 위기라 함은 그동안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 돌아보게 되고 질문하게 된다. 이 길이 맞는지, 왜 꼭 이렇게 해야 하는지 깊이 묻게 된다. 매일 닥친 일을 쳐내며 지낼 때는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데까지 시선을 두며 묻고 또 묻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흔들리니까. 그러다 보면 그동안 통했던 방식도 베스트는 아니었다는 데 생각이 닿고 길을 열어줄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찾게 된다.
우리는 평소에 늘 변화와 혁신을 말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굳이 변화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돌아가기 때문이다. 괜히 바꿨다가 이전만 못할 수도 있으니 하던 대로 하는 거다. 변화할 이유가 절실하지 않은 거다. 그런데 위기가 닥치면 더는 이럴 수가 없다. 바꾸지 않을 도리가 없고 혁신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빛나는 성과들은 코앞에 데드라인이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찾아낸 변화요 혁신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위기는 근본을 돌아보게 하고 질문하게 하며 결국은 살기 위해서라도 변화하게 한다. 이러한 변화들이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데, 바로 이런 맥락에서 위기가 곧 기회가 되는 게 아닌가 한다.
서울과 부산의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정치권은 지금 어수선하다. 이긴 쪽도 자신들이 예뻐서 시민들이 표를 준 게 아님을 안다며 자세를 낮추고 패배한 쪽 역시 연일 반성문을 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로 위기라 생각한다면 이런 질문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국민에게 자신들은 과연 무엇인지, 왜 꼭 자신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지 등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라 말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의 정치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다 위기인 것 같기 때문이고 정치가 이러면 국민들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아, 합종연횡, 조직을 만들기에도 시간이 없고 승리 전략을 짜기에도 바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앞서 레고 사례에서 보듯 답은 근본을 돌아보는 질문 속에 있을 때가 많다. 정치뿐 아니라 일하는 모든 분이 이 질문을 가까이하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왜 꼭 나라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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