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선거 대승 이후 승리에 도취된 국민의힘은 권력의 공백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른 시간에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중진들 간의 당권 다툼으로 당 회의에선 고성이 나오고, 의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주호영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겨냥해 “당신은 왜 안 물러나느냐”고 압박한다. 개혁소장파 흉내를 내던 초선들의 어설픈 ‘지역정당 극복’ 성명이 지역갈등과 계파정치라는 음울한 그림자마저 끄집어내는 등 도저히 이긴 집안이라곤 볼 수 없는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여권이 발 빠르게 당정청을 개편하면서 민심을 살피는 것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말처럼 아사리판 정도는 아니지만, 선거 열흘 만에 이 지경이면 대선은 어떻게 치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당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사심(私心)이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당과 달리 없는 살림의 야당에선 조그마한 권력이 하나 생기면 누구라도 놓지 않으려 하다 결국 모든 걸 망친다는 것. 불과 1년 전 한선교 원유철 미래한국당 전 대표가 그랬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비례 위성정당 관리를 위탁받았던 한 대표는 모(母)정당의 황교안 대표가 위임한 권한을 넘어서 실질적인 공천권을 행사하려 한 이른바 ‘한선교의 난’의 주인공이다. 한 대표와 황 대표의 충돌, 비례대표 명단의 재작성 촌극 등 공천 파동은 총선 대패의 주요 원인이 됐다.
원유철 대표는 총선 뒤 모정당과 합당을 지체하려다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야권에선 “20석 비례당 대표 자리 때문에 딴 마음 품은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위성정당 출현에 이어 ‘비례정당 독립운동’은 한국 정치를 개그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당시에도 당 대표 권한대행으로서 원 대표에게 조속한 합당을 요구했던 사람이 주호영 원내대표다. 그는 사석에선 “사심이 생기면 모든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되뇌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번엔 ‘사심 논란’의 주인공이 주 원내대표가 됐다. 그가 차기 당 대표 선거 출마 준비를 하는 게 알려지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또 지난해 원내대표 선거는 5월 8일에 했지만 21대 국회 개원일이 30일이라는 것을 근거로 “내 임기는 5월 29일까지”라고 공언한 것이나, 본인이 국민의당과의 합당까지 처리하겠다고 나선 것도 모두 ‘사심의 스펙트럼’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선거가 끝나면 바로 옛 리더십은 2선으로 후퇴하고 차기 원내대표-당 대표 선거 일정부터 못 박아 대선을 준비할 새 리더십의 비전으로 권력의 공백을 줄여 나갈 것이라는 상식의 트랙을 벗어나 버린 것.
물론 한선교의 개혁공천 의지나 원유철의 야당 강화 방안, 주호영의 합당 임무 완수 의지에 대한 충심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정치 상황에 따라 충심이 사심으로 비치고 또 활용되면서 야당 불신, 정치 불신을 초래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다행히 주 원내대표가 16일 의원총회에서 조기 퇴진을 선언한 것이 매번 반복되는 사심 논란의 종결점이자 상식의 정치의 시작점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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