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래퍼’라는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이번 해는 0.5% 정도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큰 화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멘토로 나오는 네 팀 중 하나인 ‘따큐’팀을 열심히 봤다. 따큐는 염따와 더 콰이엇이라는 래퍼가 멘토인 팀이다.
염따와 더 콰이엇이 멘토로 적절치 않아 보일 수도 있다. 더 콰이엇이 일반인에게 유명해진 계기는 랩 가사와 SNS를 통한 돈 자랑이었다. 염따는 웃겨서 유명해졌다. SNS를 통해 티셔츠를 팔아서 돈을 벌었다. 어느 날 염따는 더 콰이엇의 벤틀리에 사고를 냈다. 거액의 수리비가 필요했다. 염따는 망가진 자동차 사진을 인쇄한 티셔츠를 팔아 더 큰 돈을 벌었다. 그런 식이었다. 일상 자체가 SNS 콩트의 소재가 되는, 21세기 엔터테이너의 삶이다.
‘고등래퍼’에 등장한 이들의 모습도 별로 진지해 보이지 않았다. 염따는 제작발표회에서 “촬영이 힘들다. 각오도 소감도 없다”고 했다. 프로그램에서 염따는 늘 고등학생들을 ‘급식’이라고 불렀다. 급식을 먹는 청소년을 일컫는 속어에 가까운 표현이다. 염따가 “급식들”이라고 말하면 캡션에 늘 ‘고등학생’이라고 바뀌어 나왔다. 더 콰이엇은 소파에 늘 반쯤 누운 자세였다.
“아니요, 우리는 정해놨습니다.” 염따가 탈락자를 발표할 때 이들을 다시 봤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니까 반드시 누군가 탈락한다. 탈락자가 발표될 때의 긴장감이 시청률의 원천이다. 염따는 이 규칙을 깨버리고 바로 정해진 이름을 불렀다. “탈락자는 황세현 군!” 탈락자도 덤덤했다. 알고 보니 탈락의 경우를 예상해 학생들과 다 같이 회의를 한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런 식으로 탈락자를 정하고 긴장감을 깨버린 건 본 적이 없었다.
“재하를 위한 음악을 할 거야.” 따큐 팀은 마지막까지 한결같았다. 참가자 김재하 군이 만들어온 노래를 무대에 올렸다. 힙합 무대인데 노래 분위기에 맞춰 록 밴드 멤버를 썼고, 그 밴드 멤버 역시 그 학생의 고교 동창들이었다. 방송 속 모습으로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만 따큐 팀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경연의 승리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거기까지 올라온 고등학생의 추억을 위한 음악을 했다.
요즘 ‘어른 되기’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2030세상’이라는 원고를 보실 장년층들에게는 이 원고를 통해 젊은이들의 생각을 보고 싶을 것이다. 허나 고등학생들에게 염따가 그렇듯 10대들에게는 우리가 어른이다. 가까운 곳의 젊은 어른. 나는 요즘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내 주변 친구들은 으레 롤 모델이 없다고들 말한다. 급속한 발전 과정에서 한국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고, 예전의 규칙은 배움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 됐다. 물어볼 어른이 없는 채 어른이 되었는데 어린 친구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뭔가 묻는다. “이 바닥엔 배울 것이 별로 없었거든/고민될 땐 자신과의 대화가 전부” 더 콰이엇의 ‘여름 밤’ 가사 일부다. 자신과 대화하며 살아남은 한국 힙합의 아저씨들이 새로운 시대의 어른이 되었다. 퉁명스럽고 불량스럽되, 아이들을 위하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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