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교향곡 아홉 개 가운데 봄에 가장 어울리는 것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4번을 택한다. 따뜻하고, 밝고, 약동하는 교향곡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은 더 유명한 3번 ‘영웅’과 5번 ‘운명’ 사이에 끼어 있어 찾는 이도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 곡이 없었더라면 베토벤 교향곡의 세계란 얼마나 단조로웠을까! 슈만이 일찍이 “북구의 거인 사이에 있는 날씬한 그리스 여인”이라 평한 이 곡은 장엄한 봉우리와 깎아지른 협곡 안에서 생기를 뿜어내는 시원한 샘이요, 말없이 느껴지는 행복이요, 쓴맛이 나는 양약은 아니되 싱싱함을 되살려 주는 비타민이다. 이 곡에 들어 있는 예기치 못한 기쁨은 베토벤에게 찾아온 인생의 봄날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불과 몇 해 전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을 결심을 했던 젊은이였다. 장래가 촉망되던 음악가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다. 그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그를 벼랑 끝에 세웠다. 그러나 그는 절망을 새로운 헌신으로 바꾸었다. 아직 더 써야 할 음악이 남아 있기에,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듣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이겠다. 오직 음악에 삶을 걸겠다는 것이 젊은이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예술은 그런 결연한 투쟁정신이나 갸륵한 헌신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괴테는 인간의 최고 능력을 경탄할 줄 아는 데서 찾았다. 그런데 경탄은 마음과 감각이 열려 있을 때 가능하다. 모든 인간에게 생존은 엄숙한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생존 문제에 너무 붙들려 있으면 경탄의 능력을 발휘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때쯤 베토벤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빈 음악계에서 살아남느라, 병을 숨기고 갈등하느라 그동안 베토벤의 삶은 투쟁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한때 피아노를 가르쳐 주었던 요제피네가 불행을 겪은 뒤 빈에 돌아오자, 베토벤의 마음에 봄과 같은 온기가 가득 차올랐다. 베토벤은 그녀와 열일곱 통의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 베토벤은 그 편지들 중 하나에서 이렇게 바란다. “오,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연인이여! 왜 당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걸까요. … 오직 음악으로만 가능할 거예요! … 아, 아니에요, 음악으로도 나는 할 수 없어요. 내게 제법 넉넉한 창조력이 있다 해도 당신에게는 모자랄 뿐입니다!”
자기 모자람을 확인하는데도 마음이 기쁘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 베토벤이 사랑에 빠지자 음악도 온화하고 나긋나긋해진다. 사랑이 주는 설렘과 싱싱한 경탄이 베토벤 교향곡 4번에 온통 봄기운을 둘러준 것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지휘로 4번을 듣는다. 가로막는 리듬을 사뿐히 넘어 온화한 기쁨을 노래하는 2악장의 플루트 소리를 이 봄날 마음에 담아 보자. 아무리 투쟁적으로 살아왔더라도, 누구에게나 봄과 사랑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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