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이가 “저는 나중에 깡패가 될 거예요”라고 말한다.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그러면 나쁜 사람이야. 그런 말 하면 못 써” 하고 아이를 나무라고 만다. 일단 아이의 나쁜 생각(?)을 누르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보다 더한 말도 한다. 악덕 사채업자가 될 거라고도, 살인자가 될 거라고도 한다.
이 아이들은 앞으로 폭력적이고 나쁜 어른이 될 사람들일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거친 말, 공격적인 표현을 쓰는 아이들은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의외로 겁이나 두려움이 많다. 집이나 학교에서 자주 혼이 나거나 맞아서 마음 안에 분노나 적개심이 가득한 경우도 있다. 뭔가 공격을 많이 받거나 굉장히 불안한 아이들이 많다. 이 때문에 이런 아이들이 하는 거친 말은 사실, “그런 사람이 돼서 사람들을 공격하겠어!”라기보다는 “그런 사람이 돼서 나는 안 당할 거예요!”라는 의미가 더 강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당하지 않기 위해서 힘을 갖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알고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깡패, 악덕 사채업자, 살인자, 악당들인 것이다.
나는 이런 아이를 만나면 “넌 힘이 있는 사람이나, 센 사람이 되고 싶구나”라고 아이가 말로 표현하는 이면의 생각을, 행동으로 표현되는 마음을 통역해준다. 아이는 대번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면 “왜 평소에 힘이 좀 없어?”, “너는 힘을 왜 가지고 싶은데?” 등의 질문을 하며 대화를 풀어나간다.
아이들은 “저는 맨날 친구한테 맞아요”, “엄마 아빠를 혼내주고 싶어요”, “힘이 있으면 친구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싸움을 잘하면 멋져 보일 것 같아요” 등 지금의 아이 상황을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한다.
결국 편안한 상황에서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힘의 종류, 힘을 가지면 좋은 점, 힘이 없으면 나쁜 점 등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힘이 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낫지. 그런데 주먹도 힘이지만 다른 힘도 있어”라고 말해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눈이 동그래져서 “주먹이 제일 센 거 아니에요? 또 뭐가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넌지시 “아는 것도 힘이야. ‘아는 것도 힘이다!’라는 말도 있어. 한 번 찾아봐”라고 일러준다. 아이들은 김빠지는 듯 “아… 공부”라고 한다. “뭐 성적은 잘 받으면 좋고. 그것보다 좀 알아야 돼. 상식 이런 거 말이야. ‘펜은 칼보다 강하다’ 이런 말도 있어. 아는 것이 주먹보다 강하다는 뜻이야.” 아이들은 따지기도 한다. “아닌데요? 똑똑한 사람도 힘 센 조폭이 와서 때리면 한 방에 무너질 걸요?” 나는 인정도 해 준다. “주먹으로 때리면 그렇기도 하겠다. 그런데 있잖아. 우리가 자동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는 건 똑똑한 사람들이 발명해서 그런 거거든. 컴퓨터 이런 것도 조폭이 만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공부한 사람들이 만들걸.” 그러면 아이들은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헐…” 하면서도 뭔가 느낀다.
아이가 “악당이 돼서 돈을 많이 벌 거예요”라고 한다. 이럴 때 부모가 “이런 나쁜 놈, 우리가 너 나쁜 놈 되라고 그렇게 키운 줄 알아?” 하면 아이는 억울하다. 그 당시 아이만의 사정이 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뿐이다. 그 자체로 혼이 나고 억압받으니 억울하다. 이럴 때는 “아, 너는 세지고 싶구나.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 좀 세지.” 일단 아이의 생각을 따라가는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힘이 세서 많은 사람들을 도운 주인공이 나오는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나 책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 ‘삼국지’만 봐도 관우, 장비가 더 힘은 셌지만, 이들은 이끈 것은 유비였다.
아이들이 하는 어떤 말이나 생각을 모두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면의 표현을 적절하지 않게 할 때가 많다. 그런 말이나 행동은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따라갈 수 있는 하나의 대화의 주제로 삼으면 된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느끼고 아이의 생각을 알아보는 쪽으로 바꿔 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는 “처음에는 좀 놀랐는데 네 생각을 들어보니까 그런 뜻은 아니었네. 원래 사람은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해쳐서는 안 되는 거지. 그럴 권리가 없지. 너도 잘 알지?” 하는 정도로 마무리할 필요는 있다.
우리는 아이가 쓴 단어 하나에 너무 당황한다. 그 단어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당황을 표현할 뿐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결국 자신의 문제에 사로잡혀서 아이를 다뤄주지 못하는 것이다. 육아에서는 언제나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참 어려운 것이나,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이를 잘 키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위기의 순간에나 자신의 정서적 안정감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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