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장면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20분짜리 햄버거 오찬 회동이었다. 미국 측이 ‘코로나 예방 차원에서 곤란하다’고 했는데도 일본 측이 일대일 면담을 고집해 성사된 일정이라고 한다. 백악관이 공개한 사진에는 마스크를 쓴 두 정상이 기다란 테이블 위에 햄버거를 앞에 두고 멀찍이 앉아 있다. 바이든은 의료용 마스크 위에 검은 마스크까지 썼다. 준비한 햄버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스가는 “그 정도로 대화에 열중했다. 단번에 마음을 터놓았다”고 강조했다.
이 회동을 두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만찬을 거부당한 햄버거 회담”이라며 ‘조공외교’라고 비판했다. 쩔쩔매는 스가의 모습이 “가련했다”고도 했다. 민주당 출신 하토야마는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갈등을 빚다 9개월 만에 물러난 단명 총리. 과거사에 대한 소신 발언으로 한국에선 박수를 받지만 일본 정계에선 ‘외계인’ ‘ET’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일본 언론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은 뉴스인데도 유독 눈길이 가는 이유는 뭘까.
미국 새 행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한발 먼저 정상회담을 열고 친밀함을 과시하는 일본, 나아가 늘 일본을 먼저 배려하는 미국을 바라보면서 불편한 심사를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깟 게 뭐라고!’ 하면서도 ‘또 일본에 밀렸네. 정부는 뭐 했지?’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단순히 선망과 질시라고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다.
그런 심정적 요동은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직후라서 더욱 그랬을 수 있다. 미국에선 오염수 방류 결정이 나오자마자 국무장관까지 나서 “투명한 노력을 해준 일본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트윗을 날렸고, 방한한 기후변화특사는 한국 측의 중재 요청에도 “미국이 끼어드는 게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으니 말이다.
미일 밀월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금의 밀착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미국은 슈퍼파워 지위를 위협하는 중국을 철저히 견제하겠다는, 그리고 일본은 그런 미국에 편승해 묶여 있던 안보 족쇄를 벗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올림픽 개최와 코로나 백신 확보 등 미국의 지원이 절실한 터라 중국의 격한 반발과 국내의 우려 목소리에도 대만 문제까지 건드렸다.
내달 하순에 열릴 한미 정상회담도 여러모로 미일 회담과 비교될 것이다. 각종 의제에서, 특히 중국에 대한 톤의 차이는 두드러질 것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처지가 같을 수는 없다. 반도와 섬이라는 지정학적, 그리고 역사적 경험의 차이가 분명해서 한미일 3각 동맹이란 이름으로 한데 묶기 곤란한 지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간 중국의 횡포에 맞서 저항력을 키운 일본과 달리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한국은 더욱 조심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냉혹한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힘의 차이, 특히 군사력 격차가 큰 비대칭 동맹을 맺고 있다. 그렇다고 일방적 시혜의 관계는 아니다. 동맹은 상호 공유하는 이익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주판알을 튕기는 계산이 없을 수 없다.
우리가 목도하는 외교는 흔히 국가적 위신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힘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는 생존의 문제가 있다. 다소 모양 빠지는 자리라도 만들어 자신의 처지를 이해시키고 공감대를 넓히려는 노력을 쉽게 폄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스가의 햄버거 외교를 우리가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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