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정치권과 재계는 물론 종교계에서도 목소리가 나온다. 4·7 재·보궐선거 여당 참패,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등 달라진 정치 환경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더 큰 배경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답답하고 불투명한 현실일 것이다. 이제는 적폐청산의 시간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뤄내고, 코로나19 팬데믹과 민생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은 그제 야당 소속 서울·부산시장과의 회동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를 받고 “국민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작용돼야 한다”며 유보적으로 응답했다. 다만 박형준 부산시장은 “문 대통령이 ‘충분히 제기할 만한 사안’이라고 답변했다. (적절한) 시간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도 사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채 깊이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통치행위다. 찬반 여론의 숫자만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당장은 지지층의 반발 등으로 정치적 손실을 입더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결단을 해야 한다. 국민공감대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문 대통령이 설득과 소통을 통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첨단 산업분야에서 불꽃 튀는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위기와 맞물려 각국은 각자도생의 힘겨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삼성전자 총수에 대한 사면을 국격(國格) 제고 차원을 넘어 사분오열된 정치와 사회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중요한 모멘텀으로 적극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민주당에선 이낙연 전 대표가 올 초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를 언급했다가 지지층의 반발에 부딪힌 뒤 사면 얘기를 지금 굳이 꺼내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상황을 보아가며 야권 분열 카드로 활용하자는 기류도 있다. 야당에서도 “지금이 사면 얘기를 꺼낼 때냐” “전술적 실패다” 등등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4년 넘게 복역했고, 이 전 대통령은 1년 5개월째 수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여든 야든 사면을 대선 득실 여부만 따지는 정치공학 차원으로 접근해선 안 될 것이다.
이 부회장도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준법경영을 제도화하는 등 달라진 총수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반도체 전쟁에 이 부회장이 대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 세 명의 혐의는 다르지만 국민통합을 이뤄내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일괄 사면’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기 전에 결단을 내리는 게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오히려 최소화하는 길이다. 늦어도 8·15 광복절, 그 이전이라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문 대통령의 결단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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